| Ⅶ. 방법적 의의
임달의 방법체계는 미술사학사에 많은 점에서 의미있는 기여를 했다. 우선 임달의 방법은 미술작품을 온전한 차원에서 개체적 존재로 파악하게 했다. 미술사학자 바우어(H. Bauer)에 따르면 미술사학의 역사는 처음의 철학적, 미학적 관념체계를 벗어나 미술작품을 개체적으로 관찰하는 방향으로 전개된다고 한다.16)
해겔(G.F.W. Hegel)의 역사철학에 기반한 미술사학 조류가 전자를 대표한다면, 미술사를 경험적으로 서술하려했던 리글은 후자를 대표한다. 그러나 리글은 미술작품을 개체적으로 인식하려 했지만 아직도 미술작품을 역사적 체계로 위치시키는 한계를 보인다. 물론 임달의 체계는 후자의 진영을 따른 것이다. 하지만 그는 미술작품의 개개의 현존성에 대한 파악자체가 연구의 목적이 됨으로써 개체성을 보다 더 완전한 의미에서 관찰하게 해주었다.
이점에서 임달의 체계는 미술사학 발전의 정점으로 위치시켜도 무방할 것이다. 그에 와서 미술작품은 완전한 의미에서 역사와 철학의 페러다임에서 벗어나 순수한 예술적 페러다임으로 관찰되는 것이다. 미술작품에 대한 이같은 현상학적 접근법은 도상학 및 양식사로 대변되는 역사주의적 접근법과 대비되면서 미술사학의 현재화, 나아가 탈 역사화를 가능하게 했다. 70년대 이후 ‘미술사의 종말’이 화두로 등장하게 된 상황 역시 이와 관련될 수 있을 것이다.
미술사학사적 의미 이외에 임달의 체계가 현대적 정신지형에 던지는 함축성도 눈여겨 볼 일이다. 무엇보다 임달이 미술작품을 형언함에 있어 ‘그것 그 자체(So und nicht anders)’혹은 ‘대체할 수 없는(Nicht substitutbar) 등의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그의 작품개념에는 타자에 의해 대체될 수 없고 항상 새롭게 살아 포착되는 실존성이라는 개념이 들어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이는 현대사회의 정체성이 상실된 익명적인 상황 속에서 생기는 인간적 소외현상에 대한 항변일 수 있다.
임달의 방법은 학문의 민주화 차원에서도 의미있는 기여를 한다. 미술작품을 보여지는 바의 현상대로 바라보는 임달의 연구방법은 연구의 대상이 되는 구체적 작품이외의 자료나 지식이 필요하지 않다.
여타의 미술사학의 방법들, 가령 방대한 작품자료를 필요로 하는 양식사나 다양한 분야의 참고문헌을 필요로 하는 도상학은 해당 전문가에게만 허락된 고도의 전문작업이었다. 이에 비해 임달의 방법은 그러한 어려운 접근을 요구하지 않는다.
바로 그의 방법은 작품자체에 대한 진지한 관찰과 지각에 대한 반성이 반복되는 과정으로써만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임달식의 미술연구엔 정상적 감성적, 지적 능력만 갖추어진 사람은 누구라도 연구에 참여할 수 있게 한다. 관람자는 스스로의 시각으로 미술작품의 구조를 밝혀내고, 이를 바탕으로 미술작품을 경험해나간다.
이로써 미술사학의 고질적인 문제, 즉 해석자와 수용자와의 분리의 문제는 이로써 자연스럽게 해소될 수 있다. 관람자는 해석과 감상의 주체로써 등장한다. 미술사학 역시 학문적 아카데미즘의 틀에서 해방되며, 비로소 문화에 대한 참여적 민주주의는 질적고양의 단계에 접어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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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Bauer, Hermann, Kunsthistorik, Munchen, 1989, pp.2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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