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현대미술관사 연구- 국립미술관에 대한 인식과 제도적 모순의 근원을 중심으로

정준모(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I. 시작하는 말

II. 일제 강점기의 미술관 박물관
 1. 창덕궁박물관
 2. 조선총독부박물관
  1)조선총독부박물관 경주분관
  2)부여분관
  3)공주분관
  4)개성부리박무관
  5)평양부립박물관
  6)이외의 미술관 박물관
 3. 이왕가 미술관, 박물관
 4. 조선총독부 미술관

III. 해방 후 미술관과 박물관
  1.국립중앙박물관
  2.덕수궁미술관
  3. 국립현대미술관 경복궁 시대
  4.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시대
Ⅳ. 결론

* 참고문헌

Ⅳ. 결론

이상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국립현대미술관의 역사와 그 변천과정은 몰이해와 어려움 그리고 국민적 관심 밖에서 자생적인 동시에 몇몇 선지자들의 노력과 열의에 힘입어 오늘에 이름을 확인 할 수 있다.

사실 우리 미술관의 입지는 전통문화와 문화적 유산이라는 문화재에 대한 국민적 이해를 바탕으로 한 문화재를 다루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상대적으로 열세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오늘은 내일의 역사이자, 내일은 미래의 역사라는 점에서 전통적인 박물관학적 관점에서의 문화유산은 오늘의 현대미술과 과거의 선조들의 미술품과 하등 다를 것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대의 미술품을 귀히 여기지 않는다거나 우리민족의 전통이 될 가치를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은 매우 불행 한 일이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흔히 볼 수 있었던 일상용품들조차도 찾아보기 힘든 요즘, 우리의 문화 우리시대의 정신적 산물을 우리가 가꾸고 보존하고 이를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현대미술관의 임무도 과거를 다루고 역사를 다루는 박물관과 다를 것이 없다. 또한 미술관이란 미술박물관의 줄인 말이라는 점을 일부러 새기지 않는다 하더라도 말이다.

그렇다면 오늘의 미술관과 관련한 부당한 인식과 이에서 비롯된 왜곡된 구조와 시스템의 근원을 살펴보면서 글을 맺고자 한다.

오도된 미술관에 대한 인식과 기능은 일제 강점기 유산을 청산하지 못한데서 비롯되었다. 우선 국립현대미술관이 조선총독부가 이왕가미술관과 총독부 박물관등 미술관 기능을 수행하는 기관을 두고 순수하게 선전을 치루고 일부 대관을 통해 미술문화의 확산과 보급을 도모하고자 마련한 총독부 미술관의 기능을 계승했다는 데 있다.

1969년 국립현대미술관을 개관 하면서 그 목적을 미술관의 고유기능인 작품의 수집과 보존등 가장 근본적인 기능은 망각한 채 국전개최를 위한 미술관, 즉 소장품이 없는 전시관 형태로 출발 했다는데 있다는 것이다. 즉 국립현대미술관은 미술계의 여론에 밀려 충분한 연구와 토의절차 없이 또 국전의 잡음을 두려워 한 일부 행정가들의 책임회피를 위한 수단으로 오직 국전개최만을 위해 출범한 셈이다. 엄격하게 말하면 전시기능만을 갖춘 미술관은 진정한 미술관이라 할 수 없다.

하지만 가장 기초적인 미술관의 설립은 미룬 채 국립현대미술관이 발족함으로서 오늘까지 이어지는 이러한 오도된 인식과 시스템의 문제가 발생하였고 오늘가지 이어지면서 왜곡된 미술관 상만 거듭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이러한 굴절된 출발은 많은 곳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단편적이지만 국립현대미술관은 오늘까지도 한국의 도서관 박물관 정책을 다루는 부서에 소속되지 못하고, 문화예술진흥을 목적으로 하는 부서에 배속되어 미술관이 미술관 본연의 임무보다는 현장의 미술진흥에 중점을 둘 수밖에 없는 시스템 속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선전개최와 국전운영으로 이어지는 미술관의 기능은 조사와 연구, 작품의 보존과 관리, 기록 등에서 많은 문제점을 노정하고 있다. 이러한 미술관의 전문적인 임무를 수행 해야 할 전문 인력의 확보자체가 어려운 구조일 뿐 만 아니라 설혹 확보된다하더라도 자신의 전문성을 토대로 소신 있는 행동이 일정부분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두 번째 국립현대미술관의 태생적 문제점은 우선 국립현대미술관의 개관에 따른 컬렉션 즉 소장 작품이 한 점도 없었다는 점이다. 외국의 경우 미술관이 개관하기 위해서는 수년간 소장품을 확보하며 이를 위한 노력이 우선되고 소장품이 어느 정도 확보된 연후에 미술관을 개관하는 것이 상례이다.

그런데 우리 국립현대미술관은 소장품 한 점 없이 오직 건물만 가지고 출발했다는 점에서 오늘날까지도 그 어려움이 이어져 오고 있다. 이는 소장정책에서는 이왕가 미술관이 수장하여 해방 후 덕수궁미술관으로 이관된 우리 근대기 중요미술품과 일본 주요 근대미술품을 1969년 5월 유물 박물관의 성격이 강한 국립박물관으로 흡수 통합되면서 전환해 주고 우리는 같은 해 10월 우리 근대기를 규명하고 증거 해 줄 소장품 한 점 확보하지 못 한 채 개관하는 아이러니를 연출하고 마는 것이다.

개관당시 국립현대미술관은 명칭에서 현대라는 단어를 사용하면서 매우 진취적인 입장을 표방하였으나 소장품과 관련해서는 차라리 요즘의 아트센터 와 같은 기능을 하는 소장기능은 없고 오직 전시만을 하는 기관의 성격으로 출발 한 것은 커다란 문제점으로 남아있다. 이와 함께 국립현대미술관이 개관 당시부터 안고 있는 문제점 또 하나는 오직 국전만을 수행하기 위한 미술관의 기능을 전제로 출발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미술관의 핵심이라 할 학예연구원의 미 확보 즉 미술사, 미학 등 미술관 관련 학문 전공자들이 미술관에서 기능 할 수 있는 기회와 역할이 전무한 상태에서 개관한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전문인력을 전혀 활용할 수 없는 상태에서 시작되어 미술관을 구성하는 삼대요소라고 일컫는 소장작품, 건물, 사람 중 오직 한가지 요소만을 갖추고 출범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60년대 말 ‘종합박물관건축계획안’등으로 고조된 미술관, 박물관에 대한 관심은 경제개발과 수출드라이브 정책에 밀려 정부나 국민들의 관심권으로 크게 진입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1980년대 한국의 정치적 격랑은 한국사회 전반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권좌의 정통성을 확보하지 못했던 전두환 정부는 70년대의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급성장한 생활환경에 따라 문화적 욕구가 증대된 국민들의 문화 향수권 신장과 정권의 정통성을 담보해 내기 위하여 문화와 스포츠에 과감한 투자를 하였다.

이러한 문화에 대한 무계획적인 과시성 예산의 투자는 국립현대미술관의 과천으로의 신축 이전으로 가시화 되었다. 접근성과 문화시설로서의 기능성을 도외시 한 채 서울대공원 후미에 위치시킨 국립현대미술관은 당시 위정자들의 문화에 대한 식견을 그대로 드러낸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국립현대미술관의 과천이전과 함께 미술전문인력들이 미술관 운용에 함께 함으로써 나름의 전문성을 확보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위안을 삼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인력들이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보다 진보적인 시각에서 미술관의 조직과 제도가 시급히 보완되어야 할 것으로 보이며 이런 지적은 미술관의 진입로와 함게 아직도 미제로 남아있다.

한편 한국의 미술관, 박물관 역사에 획기적인 것은 1984년 ‘박물관 법’이 제정 된 일 이다.이는 박물관의 법적, 사회적 지위를 명문화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이 법률안에서 미술관은 준 박물관 시설로 규정함으로써 당시 시대적으로 미술관의 진보적인 활동과 의미를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1992년 이 법률안은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으로 개정되어 박물관과 미술관 설립을 좀더 용이하게 하고자 하는 의지를 표방하였으며 1998년 12월 다시 개정된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에서는 큐레이터의 자격 인증 제도와 각종 강제 조항등을 폐지하고 있고 대학 박물관들이 이 법령에 포함된다는 점이 큰 특징이다. 하지만 이렇게 개정된 법률안이 미술관 활동과 설립에 순 기능을 하고 있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보다 현실적이고 실질적인 지원과 진흥책이 법안에 포함되어야만 정부의 박물관 미술관 진흥 의지를 실감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간의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미술관 문화의 개선과 올곧은 시스템의 구축에서 가시적인 성과가 부족한 것은 애당초 잘못 끼운 단추 때문이다. 이제라도 단추를 풀어헤쳐 새롭게 채우려는 노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