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현대미술관사 연구- 국립미술관에 대한 인식과 제도적 모순의 근원을 중심으로

정준모(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I. 시작하는 말

II. 일제 강점기의 미술관 박물관
 1. 창덕궁박물관
 2. 조선총독부박물관
  1)조선총독부박물관 경주분관
  2)부여분관
  3)공주분관
  4)개성부리박무관
  5)평양부립박물관
  6)이외의 미술관 박물관
 3. 이왕가 미술관, 박물관
 4. 조선총독부 미술관

III. 해방 후 미술관과 박물관
  1.국립중앙박물관
  2.덕수궁미술관
  3. 국립현대미술관 경복궁 시대
  4.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시대
Ⅳ. 결론

* 참고문헌

3. 이왕가 미술관, 박물관

1893년 이래 대한제국의 총세무사로 있다가 한때 러시아에 의해 파면되었다 복직한바 있는 영국인 브라운(Sir John Mcley Brown)의 발의에 의해 1901년부터 공사를 시작하였다. 중도에 정변으로 말미암아 중지되었다가 1907년 6월에 대략 준공하고 1910년 말에 이르러서야 실내장식등을 마치고 나머지 설비를 마쳐 결국 1911년 6월 건립이 완료되었다.24)

황실의 신식 궁전으로 건립된 덕수궁 석조전은 대한제국의 마지막 거대한 유물이자 조선왕조의 마지막 대형 건축물이다. 접견실과 황제의 침실과 거실등이 자리한 3층으로 면적이 총 1,264평 정도의 이 건물은 19세기 초 미국에서 유행한 영국스타일의 식민주의적 건축양식으로 유행하였던 고전주의적 양식을 답습한 것이다.

이 석조전은 황실이 몰락하고 총독부의 압제가 심해지면서 1933년 5월 결국 황실과 총독부는 덕수궁 석조전을 상설미술관으로 사용하기로 결정하고 일본인들이 중심이 된 자문단으로 하여금 황실박물관 소장품 선정 및 일본미술가 작품 수집을 시작하였다. 물론 황실은 일찍이 황실 소장미술품 이천여점을 한곳에 보관 수장할 목적으로 1908년 10월 창경궁에 박물관을 마련 한 바 있다.

총독부는 덕수궁 석조전을 미술관으로 개조하여 일반에 공개 할 목적으로 공사를 개시하였다. 이 당시 미술관의 목적은 황실 소장품뿐만 아니라 동경 제실(帝室)박물관과 미술학교의 소장품까지도 들여와 순환전시를 할 계획으로 있었다. 이후 전시대상 작품 500점중 공민왕, 안견, 강희안등 명장들의 명품을 선정하였다. 이와 함께 황실은 자신들이 소장한 일본화 370점, 유화 151점, 조소 76점, 공예 152점에서 선별하고 또한 일본의 유수한 화가들의 작품들도 섭외하여 전시하기를 희망하여 일본미술의 대표적인 작품들을 수집하는 일을 동경제국대학의 쿠로가와 카츠미(黑坂勝美)에게 위촉하였다.25)

그는 의욕에 넘쳐 일본의 각종 미술단체의 중요작가를 망라하는 종합미술전람회를 구상하였다. 하지만 일본작가들의 한국의 전통적인 고색창연한 작품과는 전시하기를 꺼림에 따라 1933년 10월 1일부터 ‘일본 미술계의 최고 걸작품을 망라한 미술의 정화’를 전시함으로써 덕수궁 석조전은 미술관으로 첫 발을 내디뎠다.

이후 총독부는 한국미술의 정수와 일본미술을 함께 전시하기로 한 계획을 뒤엎고 덕수궁 석조전을 일본미술품으로 채우기로 결정하여 ‘일본 미술계 최고의 걸작품을 망라한’전람회를 20일 주기로 교체하는 용도로 사용하기 시작했고 조선미술작품은 이듬해 봄, 가을에 두 차례만 전시함으로써 결국 석조전은 일본미술전용전시관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덕수궁 석조전이 일본미술 전시장으로 일관함에 한국미술품도 함께 전시하자는 여론이 비등해 짐에 따라 황실은 조선미술품 전시를 위한 건물을 석조전 옆에 짓기로 하고 1936년에 신관인 서관 공사를 시작했는데 물론 일본인 나카무라 요시헤이(中村興資平)가 설계한 것으로 석조건물이 아닌 철근 콘크리트조의 인조대리석 건물이었다.

이 건물은 1938년 2월에 완공되었고 이에 황실은 1938년 3월 25일 창덕궁 명정전에 자리한 황실미술관을 폐관하고 신관 완공을 계기로 이전을 시작해 6월 5일 일반에 공개하면서 창덕궁 이왕가박물관은 덕수궁 석조전과 새로 건립한 신관을 망라하여 ‘이왕가미술관’으로 명명하였다.26)

당시 구관인 석조전은 종래대로 일본의 미술품을 신관은 창덕궁에서 이전해 온 조선의 미술품을 전시함으로써 ‘이왕가 미술관’은 정식으로 출범하였으나 통상 구관인 석조전은 덕수궁미술관, 서관인 신관은 이왕가 박물관으로 불렀다. 통칭 이왕가 미술관 즉 서관은 창경궁내의 이 왕가박물관에서 삼국시대 이래의 조각, 공예품, 도자기, 회화, 그리고 조선 출토 중국 도자기등 미술품만을 추려내어 이관 받아 발족하였다.

이 건물은 8실의 전시실과 수장고, 강당 등을 갖춘 우리나라 최초의 미술관이자 미술관용도로 건립된 최초의 건물이기도 하다. 이 미술관은 이른바 이왕직이라는 기구의 산하에 있어 일본 궁내성 소속이었다.

일제시대에는 이 석조전에 이 황실에서 구입한 현대화가 전시되었었고 서관에는 한국의 전통 고 회화, 도자기, 불상등이 전시되었었다. 특히 이왕가미술관은 구황실의 풍부한 재력을 바탕으로 질 높은 수장품을 많이 확보 할 수 있었고 이는 총독부박물관의 수장품 보다 월등하게 우수한 작품들이 많았다.


24) 김순일, 「덕수궁」,1991, 대원사, 서울, P.75-77
25) 최열, 앞의 책, P.311
26) 조선일보, 1938년 2월 9일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