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현대미술관사 연구- 국립미술관에 대한 인식과 제도적 모순의 근원을 중심으로

정준모(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I. 시작하는 말

II. 일제 강점기의 미술관 박물관
 1. 창덕궁박물관
 2. 조선총독부박물관
  1)조선총독부박물관 경주분관
  2)부여분관
  3)공주분관
  4)개성부리박무관
  5)평양부립박물관
  6)이외의 미술관 박물관
 3. 이왕가 미술관, 박물관
 4. 조선총독부 미술관

III. 해방 후 미술관과 박물관
  1.국립중앙박물관
  2.덕수궁미술관
  3. 국립현대미술관 경복궁 시대
  4.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시대
Ⅳ. 결론

* 참고문헌

4. 조선총독부 미술관

총독부는 이왕가미술관 개관에 따라 상대적인 문화적 치세의 일환으로 그리고 조선미술전람회의 영속적인 개최장소 확보라는 측면에서 1939년 총독부 뒤뜰에 조선총독부 미술관을 마련하였다.27) 1938년부터 짓기 시작한 이 미술관은 구 공진회미술관을 대체하는 건물로 첫 전람회를 조선 총독부 주최 서도전람회로 시작하면서 일반인들도 사용할 수 있도록 대관제도를 마련해 두었다.

이는 조선미술전람회를 개최하는 일차적인 용도 외에 기타의 기간에는 전시를 희망하는 기관이나 단체 또는 개인에게 전시공간을 제공하고자 함이었다. 또한 이 미술관은 소장기능이나 작품의 수집과 보존, 연구라는 미술관의 일차적인 목적보다는 전시에 미술관의 기능을 국한시키는 독일 등의 쿤스트 할레(Kunst Halle)와 같은 기능을 함으로써 해방 후 1969년 개관하는 국립현대미술관의 왜곡되고 굴절된 기능과 구조의 전범이 되고 있기도 하다.

총독부 미술관은 개관한 해인 4월 제 18회 선전을 개최하여 새로운 건물에 대한 호기심까지 겹쳐 당시 선전은 사상 최고의 관람객을 동원하기도 하였으며 1940년에는 당시 총독부 미술관의 관장격인 정치참사관 카토우의 도움으로 총독부 후원을 얻어 재 동경미술협회 제 3회 회원전을 대관해 줌으로써 대규모의 회원전이 가능하기도 하였다. 이후 4회,5회, 6회전도 계속해서 이곳에서 개최한다.28)

같은 해 여름에는 일제 육군미술협회는 육군성, 조선군, 조선총독부의 후원을 얻어 7월 4일부터 7월 18일가지 지나사변 4주년 기념 전람회로 ‘성전(聖戰)전람회’를 개최하기도 하고29) 1944년에는 ‘결전미술전람회’를 개최함으로써 일제의 군국주의와 침략전쟁을 미화하고 참전을 촉구하는 도구로 미술관이 사용되기도 하였다.30) 즉 미술관의 기본적인 기능과 역할보다는 총독부의 필요와 요구에 따라 일제침탈을 합리화하거나 일제의 침략전쟁을 미화하고 참전을 독려하는 선전장으로 기능하였다.


27) 동아일보, 5월 12일자
28) 최열, 앞의 책, P.456
29) 동아일보, 1940년 6월 22일자, 조선일보, 1940년 7월 5일자
30) 최열, 앞의 책, P.5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