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II. 해방 후 미술관과 박물관
1945년 해방과 함께 한국의 역사는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하게 된다. 그러나 역사적 자각과 문화적 배경 없이 정치적 야심으로 해방을 맞았던 정치가들에게는 미술관이나 박물관이 민족의 정체성 확립이라는 중요한 기능과 문화를 공유함으로써 민족의 동질성을 확보해 내는 기관이라는 정치적 기능을 인식하기에는 너무나 안목이 좁았다.
따라서 건국과 새로운 정부수립과정에서 박물관, 미술관 정책은 건국이념을 수용하고 현실화하는 과정에서 별개의 사안으로 취급되고 말았다. 해방이후 최초의 지방박물관인‘인천 시립박물관’이 선각자 이경성의 노력에 의해 개관하는 등31)의 성과들도 있었으나 해방공간의 혼돈은 개인이나 공공 소장가 들이 수장하고 있는 작품들을 온전하게 보관하는 일도 힘에 부친 상황이었다.
1. 국립중앙박물관
오늘의 국립중앙박물관이 규모를 갖추고 용산에 제 모습을 갖추기 위해서는 우리역사의 질곡만큼이나 우여곡절이 많았다. 이는 우리문화에 대한 인식의 정도와 국민의 문화적 식견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특히 그 책임의 일단은 이 땅의 지도자라는 정치, 경제인들의 문화에 대한 몰이해와 천박함에도 일정 부분 그 책임은 크다 할 것이다.
일제 강점기 물산공진회가 사용하기 위해 건립된 건물을 사용했던 조선총독부 박물관은 이곳에 전시실을 두고 경복궁 자경전에 사무실을 두었었다. 이후 광복과 함께 경복궁내의 조선총독부박물관은 국립박물관으로 출범하였고 같은 해 10월 경주, 부여로 소개시켰던 유물들을 다시 서울로 복귀시키기에 이르렀다.
이런 과정에서 국립박물관은 일제시대 학무국 사회교육과의 일개 계에 불과하던 조직을 분리하였고 이후 현 문화재청의 업무인 고 건축 수리사업을 분리하여 명실 공히 박물관다운 조직을 갖추고 기에 이르렀고 초대관장에 김재원 박사가 취임하였다.1946년에는 개성시립박물관을 국립박물관의 분관으로 흡수하였고32) 1949년 우리 나라 박물관, 미술관 역사상 매우 중요한 사건인 ‘국립박물관’ 직제가 제정 공포되었다.
이는 문교부 산하의 별도 기관으로서 ‘국립박물관’이 기능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함께 현 교통방송이 자리한 전 중앙정보부 남산분관 자리에 있던 곳에 일제하의 시정 기념관(施政紀念館)은 해방과 함께 야나기 무네요시가 집경당에 수집해 놓았던 민속자료를 토대한 ‘조선민족미술관’은 그 소장품을 이곳에 옮겨 관장에 송석하씨를 임명하고 국립민족박물관을 출범시켰다.
이 박물관은 1950년 국립박물관에 흡수 통합되지만 오늘의 국립민속박물관의 전신이라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국립박물관은 한국전쟁 발발과 함께 부산으로 대피하였다가, 환도 후 경복궁 철수명령에 따라 1953년 10월 남산의 조선민족박물관 자리로 옮겼다가 다시 1955년 당시 관장인 김재원 박사의 이승만대통령간의 독대 끝에 덕수궁 석조전으로 이전하였다.
1968년 7월24일 문교부 산하에서 문화공보부로 그 소관부처가 바뀌었고 1969년 5월 덕수궁미술관을 흡수통합 함으로써 명실 공히 종합박물관으로서의 위상을 갖추었다.
이후 1972년 7월 29일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직제를 개편하여 박물관의 전문직과 일반행정직 간의 박물관 주요업무의 성격과 한계를 분명히 함으로써 박물관의 전문성을 견고하게 하는 틀을 마련하였다.
같은 해 8월 25일 경복궁내에 건물을 신축하여 (현 국립민속박물관)으로 이전하였고 1975년 8월 20일 지방분관을 지방박물관으로 개편하였다.
이후 1966년 문화재관리국이 경복궁 수정전내에 설립한 한국민속관이 1975년 4월 국립현대미술관이 덕수궁 석조전으로 이전하자 경복궁 현대미술관에 입주하여 한국민속박물관으로 개관하였고 이후 1979년 문화재관리국에서 국립중앙박물관으로 흡수되어 국립 민속박물관으로 귀속됨으로써 종합박물관으로써 위상을 강화하기에 이른다.33)
국립중앙박물관은 1986년 중앙청으로 이전34)하였으며 구 중앙청 철거에 따라 현재 임시건물에 입주해서 박물관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현재 6번째의 이전지가 될 용산의 가족공원에 새로운 박물관을 2005년 개관을 목표로 건립 중에 있다.
31) 이경성, 「어느 미술관장의 회상」,1998, 시공사, 서울, P.36-40
32)김재원, 「박물관과 한평생」,1992, 탐구당, 서울, P.83-100
33)1992년 다시 국립중앙박물관으로부터 독립하여 문화부 1차 소속기관으로 자리 잡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34)일제 당시 우리나라를 지배하기위해 일제에 의해 건립된 건물로 해방 후 정부청사로 사용되었고 1986년 이후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사용되었다. 1997년 구 중앙청 철거라는 국책에 따라 철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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