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I. 본 문
9.국립근대미술관을 향하여
1) 자신의 저작물에 대한 복제로부터의 수입이 주가 되는 다른 기타 저작권자들과는 달리 덕수궁 분관시절 마련한 「덕수궁미술관 중장기 발전계획(안)」50) 은 그 목적 조항에서 여타 미술관과 기능적 차별화와 근대미술의 보존, 연구, 전시, 교육을 통한 근대미술의 총체적 요람, 도심에 위치한 복합문화공간으로서 친근한 미술관의 역할을 지향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단계별 발전계획은 다음과 같다.
2) 발전단계
1. 제1단계(현재-2001.12)
- 직제 독립을 통한 인원, 예산을 확보하여 다양하고 체계적인 사업 계획 수립, 국립근대미술관 설치
- 수장고 설치 공사 완료 -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근대미술 작품과 관련 자료의 단계적 이관
2. 제2단계(2002-2004)
- 덕수궁 석조전 동관 인수
- 서관과 동관의 기능을 분리하여 각자 특화된 공간으로 활용
- 덕수궁미술관의 이미지를 대표할 수 있는 문화상품을 개발하고 홍보를 강화하여 대 국민 이미지 강화
3. 제3단계(2005-2007)
- 덕수궁미술관 부설 근대미술연구소 설립
- 전시, 교육, 문화, 학술행사 등을 통하여 친숙한 미술관의 이미지를 지향하는 것과 아울러 근대미술의
연구기능을 확대, 강화하여 내외적으로 명실상부한 국가대표 근대미술관으로서 자리 매김
4. 제4단계(2008-2010)
- 근대미술의 보존, 수복, 전시, 교육, 문화, 학술행사, 미술정보제공 및 기타 근대미술관과 관련된 자체
역량 강화를 통하여 주변문화기관을 선도하고 도심지 문화공간의 중심체로서의 위상 정립51)
이 계획안에 따르면 현재 석조전 동관을 사용하고 있는 궁중유물전시관이 2003년 경복궁으로 이전함에 따라 동관을 추가 확보하기로 되어 있다. 계획대로 이뤄진다면 석조전 동관은 서관과 비슷한 규모이므로 전시실, 수장고, 부속실, 사무실과 기타 공간이 2배로 확장되는 것이다. 따라서 미술관으로서 최소한의 요건을 충족시킴에 따라 명실상부한 국립근대미술관의 탄생 가능성을 높일 것이다.
특히 덕수궁 석조전 건물은 서세 동점의 산물이자 마지막 황제인 고종이 머물렀던 건물이라는 점과 식민지 시대에 황실 미술관, 해방 후에도 덕수궁미술관, 전후 국립박물관, 그 뒤 국립현대미술관이 입주해 있었다는 점에서 두말할 나위 없이 국립근대미술관으로 가장 최적의 역사성을 갖춘 곳이다.
이와 같은 건물을 확보하면서 선결해야 할 일은 미술관 기구의 독립이다.
독립 기관으로서의 위상을 법적, 제도적으로 마련하고 예산과 인력을 확보하지 않으면 「덕수궁미술관 중장기 발전계획(안)」에서 제시하고 있는 어떤 기획도 제대로 실현해 나가기 어려울 것이다. 예산 수립과 운영, 사업 따위 거의 모든 영역에서 국립현대미술관과의 위계질서에 따른 종속 정도가 아니라 국립현대미술관의 일부에 지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윤리나 관습에 따른 운영은 법과 제도에 의한 보호와 거리가 멀다. 투철한 윤리성은 사람의 의지에 따르는 것일 뿐 법에 따른 조직 상황의 변화 앞에선 무기력할 수밖에 없다.
국립근대미술관 설립의 적기는 2003년 덕수궁 석조전 동관을 궁중유물전시관으로부터 이관 받을 때이다.52)
먼저 건물의 확보가 선결조건인데 이 조건이 해결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조건 보다 중요한 것은 시대의 요청이다. 21세기의 초입에 들어선 지금 한국사회는 이른바 근대의 개념과 시기구분 따위를 새로이 조정함으로써 현대를 설계하고 전망해 나가야 할 과제 앞에 당면해 있다. 미술계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특히 근대미술에 관한 새로운 개념 규정은 근대미술의 역사적 가치와 평가를 혁신해 나갈 것이고 현대미술의 이념과 양식의 지향을 점검할 근거를 마련하는 기초작업의 의미를 지닐 것이다.
나아가 근대미술에 관한 활발한 검증작업은 미의식을 공유하고 있는 지역 공동체 안에 활력을 불어넣는 계기로 작용할 것이다. 국립근대미술관 설립은 그 계기를 폭발시킬 요인이며 거꾸로 현대미술의 다양성을 수렴하는 국립현대미술관의 역할과 기능을 크게 혁신시켜 낼 수 있을 것이다.53)
이와 함께 신설 국립근대미술관은 국립중앙박물관과 각 지역 국립 박물관 및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근대미술품의 이관을 실현해 나가야 한다.54) 물론 각 관의 조직에서는 이관을 반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보완 방법으로 국립 박물관, 미술관 연합체계를 만들어 교류와 협력 체계를 구축하고 소장품 운영의 역동성을 갖춰나간다면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따라서 명확한 것은 국립근대미술관 설립과 동시에 근대미술품의 이관을 이루기 위해 설립 준비과정에서 해당 박물관, 미술관과의 합의를 도출해 내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특히 근대미술품의 개념과 그 해당 시기 및 작가, 작품에 관한 명확한 합의가 이뤄지기 위해서는 상당한 논란이 필요할 것이다. 현재 근대시기에 관한 견해가 매우 다양하고 또한 일반 합의조차 없는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그러나 논란이 되고 있는 ‘19세기 미술’과 ‘20세기 후반기 미술’은 토론을 지속해 나가는 것으로 하되 그 사이인 ‘20세기 전반기 미술’의 경우 광범위한 합의에 도달해 있는 상태이므로 합의에 이르는데 장애가 거의 없다 할 것이다. 따라서 이 시기의 작품 이관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물론 작품 이외의 자료도 함께 이관해야 함은 두 말할 나위가 없겠다.
작품의 이관과 더불어 작품 구입 예산 확보가 이뤄져야 한다.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작품 가운데 20세기 전반기 작품을 이관한다고 해도 소장품 확보가 끝나는 것이 아니다. 지속적인 발굴과 구입을 통해 근대미술 최대의 수장미술관이 되어야 할 것이다.
여기서 가장 큰 난관은 구입예산을 상당히 확보한다고 해도 20세기 전반기 미술품은 이미 여러 국공사립 미술관에서 상당히 수장하고 있으며 또한 있다고 해도 지나친 고가라는 점이다. 따라서 중세에서 근대로의 이행기인 19세기 작품을 대상으로 하는 대규모 구입을 꾀하는 전략을 세워 볼 수 있을 것이다. 19세기 미술작품은 지금껏 주목받고 있지 못하고 있어서 상대적으로 구입하기에 용이한 실정이다.55)
이와 같은 실정만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19세기 미술은 미술사에서도 공백으로 남아 있으므로 국립근대미술관이 이 부분을 채워나가야 하는 당위성을 반영하는 것이겠다. 누구도 발견하지 못한 19세기 미술에 대한 가치를 조사, 연구함으로써 이를테면 19세기 미술관이란 이름을 얻을 수 있지 않겠는가. 이러한 명성이 가능할 만큼 그 소장품을 확보할 수 있다면 근대미술관으로서 특성화와 차별화 전략은 절반 이상 성공하는 셈일 것이다.
또한 자료와 관련하여 구매 및 발굴, 조사, 연구비용의 특별한 책정이 요구된다. 국립근대미술관은 단지 국민의 문화 향수권을 보장하는 전람회 개최만 하는 곳이 아니다. 국립근대미술관은 근대미술사학회나 관련 대학, 연구소는 물론 연구자 개개인의 연구중심 기능과 역할을 담당하는 기관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개인이나 사설 단체가 실행하기 어려운 근대미술관련 자료의 수집과 도서관 운영이든지 전산화 작업을 통한 정보자료 제공 사업을 통해 근대미술의 중심 구실을 해야 하는 것이다.56)
끝으로 직제에 따른 조직은 미술관을 움직이는 핵심 역량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설립 이후 무려 12년 동안 전문인을 채용하지 않다가 미술평론가를 관장으로 채용했지만 직원은 그 뒤로도 5년을 기다려서야 학예사를 채용했다. 17년만의 일이었지만 그나마도 비전문 공무원으로 구성된 전시과가 전시기획, 작품선정, 작품 반출입, 소장품 수집계획 및 수집심의위원회 운영, 구입 및 기증, 국내외 미술가 창작활동 지원을, 섭외교육과가 교육을 맡음으로써 전문 학예사는 소장품 연구와 학술 관련활동 따위만을 수행하는 그야말로 세계에서 유례 없는 상황을 연출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파행과 기행에 관한 비판이 안팎으로 꾸준히 제기되었음에도57) 불구하고 지금까지 직제개정을 통한 변화 가능성은 거의 보이지 않고 있다.
당연히 미술관은 학예사 중심 직제로 전환되어야 할 것이고 이것은 비단 국립근대미술관만이 아니라 기왕의 국립현대미술관과 부산, 광주, 대전과 같은 각 지방자치단체 산하 미술관에도 적용되어야 할 당면 과제이다. 이와 관련하여 덕수궁미술관 관장 최은주는 「국립현대미술관의 운영실태를 통해 본 국공립미술관의 현황과 전망」이라는 논문에서 국립현대미술관의 직제를 다음과 같이 제안한 바 있다.
▣ 직제개정안58)
이러한 직제개정안은 “미술관 활동의 전문성과 국제성을 고양하기 위한 학예연구실 기능의 확대 및 사무국과의 평형 유지, 전시기획 및 실행기능의 일원화 및 인원조정, 대중들의 사회교육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사회교육과 신설, 미술관의 대외활동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대외협력과의 신설”59)을 골자로 하는 것으로 그 핵심은 전시기획과 실행 기능을 학예연구실로 이관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개정안은 현재 이뤄지지 않고 있다.60)
이 같은 개정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이유는 정부조직법 개정을 위한 문화관광부, 행정자치부, 기획예산처의 합의는 물론 대통령의 재가가 필요한 사항이기 때문이 아니다. 한마디로 대통령을 비롯한 행정 관료의 관행과 그 의식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미술관에 관한 기초지식을 갖추지 않은데다가 설령 학습을 통해 직제의 정상화 방식을 인지했다고 하더라도 기존 관료들의 권한 행사 관행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이해관계 및 보수의식이 그 장애물이란 뜻이다.
예를 들어 기증품 상설전시장 설치를 둘러싼 서울시립미술관과 서울시문화과의 전문직과 행정직 사이에 노출된 파행은 서울시문화과 행정관료의 왜곡된 권한 행사가 낳은 사건이다.61)국립근대미술관 설립 과정에서도 이와 같은 파행성이 되풀이되지 않기 위해서는 기형화된 기존의 법과 제도를 혁신해야 할 것이다.
더불어 학예사의 양성이 급증하고 있는 추세를 반영하여 학예사의 성장과정을 반영하는 제도적 장치를 기존 미술관은 물론 국립근대미술관에서도 마련해야 할 것이다.62)그밖에도 국립근대미술관 설립과 관련하여 미술관, 박물관 정책을 주도하는 국가 전담기관의 설치, 지원과 평가를 주관하는 공공 재단 및 위원회 설립 등의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주도면밀한 노력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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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덕수궁미술관 중, 장기 발전계획(안)」, 국립현대미술관, 2001.7.
51) 「덕수궁미술관 중, 장기 발전계획(안)」, 국립현대미술관, 2001.7.
52) 2001년 4월 일본에서 국립 박물관과 국립 미술관을 몇개의 독립행정법인으로 통합했다. 그러나 이 통합은 각 박물관, 미술관의 고유한 기능과 역할을 통폐합한 것이 아니라 상호협력체제를 강조하는 조치에 지나지 않는다. 분리와 통합의 질서를 강화한 것이겠다.
53) 국립현대미술관은 지금껏 한반도 지역공동체에서 20세기 미술관 구실을 해왔다. 따라서 포괄성이란 측면에서는 커다란 가치를 지니고 있지만 현대미술 또는 근대미술이라는 특성화 전략과 집중을 통한 강력한 역동성의 확보, 현대미술에 조응하는 자기 정체성 확립에서는 후진성 또는 애매성을 한계로 갖고 있는 상태다. 따라서 국립근대미술관 설립을 계기로 20세기 미술관의 포괄성을 포기하고 현대미술관으로 정체성을 확보해 나가야 할 것이다.
54) 각 박물관,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근대 해외 작품도 예외는 아니다. 이를테면 2002년 11월에 열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일본근대미술전 출품작이 그에 해당하는 것이다.
55) 19세기는 국망의 쇠퇴기라는 인식 탓으로 일반 역사학계는 물론 미술사학계에서도 연구의 대상에서 배제되어 왔었고 따라서 해당 시기 미술의 방대함에도 불구하고 낮게 평가되어 왔다. 그러나 최근 중세에서 근대로의 이행기란 의미에서 그 시대의 중요성이 확인되고 있고 또 일부의 연구를 통해 19세기를 재인식하기에 충분한 성과가 제출되고 있다.
56) 학예연구실, 「미술관과 자료」, 국립현대미술관, 1999.
57) 이인범, 『미술관제도연구』, 한국예술종합학교 한국예술연구소, 1998. 최은주, 「국립현대미술관 운영실태를 통해 본 국공립미술관의 현황과 전망」, 『미술학의 지평에 서서』, 학고재, 1999.
58) 최은주, 앞의 책.
59) 최은주, 앞의 책. 그러나 이 개정안은 1999년 당시에 착안된 것으로서 미술관의 본격적인 확장 계획을 수용하지 못하였다. 덕수궁 분관을 비롯해 향후 국립현대미술관이 추진하고자 희망하는 사간동미술관, 지방 분관 등의 직제를 구축할 수 있는 시스템의 정립이 시급하다.
60) 법과 제도에 따르면 학예연구실은 전시, 작품구입, 교육 업무와 무관한데도 최근 국립현대미술관은 전시의 기획과 전시작품 발굴 및 구입 작품 결정과정에서 학예연구실의 역할과 그 비중이 확대되고 있는 추세이다. 업무의 전문성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이에 따라 배정 인력과 업무 절대량 사이의 모순이 노출되고 있다.
61) 노형석, 「서울시장 교체 불똥 갈곳 잃은 민중미술」, 『한겨레신문』, 2002.8.7. 정재숙, 「새로 문 연 서울시립미술관 출발부터 삐걱」, 『중앙일보』, 2002.8.8.
62) 이와 같은 행정관료 우위 의식 또는 권한 행사는 실제로 직제와 같은 법과 제도에서 비롯되는 것인데 따라서 모든 국공립 문화기관 관련 법과 제도의 일대 개혁이 필요하다 하겠다. 지금껏 많은 논객들이 이와 관련된 문제들을 헤아려 왔다. 앞서의 이인범, 최은주의 글을 비롯해 다음과 같은 글들이 있다. 오광수, 서성록, 이인범, 이용우, 이준, 하계훈, 정양모, 유준상, 「한국미술의 큐레이터」, 『공간』, 1991.8. 윤범모, 이주헌, 김승희, 서상우, 엄혁, 「미술관문화의 현주소」, 『가나아트』, 1991.3-4. 정준모, 이근용, 박성태, 「큐레이터&큐레이팅」, 『월간미술』, 1995.3. 정홍익, 김영순, 엄은화, 김경희, 백태현, 박우찬, 「지방자치시대의 미술문화공간」, 『가나아트』, 199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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