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I. 본 문
4.국립현대미술관과 덕수궁 석조전
국립현대미술관 정원은 1972년 7월 대통령령 제6288호 직제개정에 따라 8명이 20명으로 늘어났다. 핵심은 담당을 없애고 서무과, 조사연구과, 전시과로 확대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바뀐 것은 인원 증가일 뿐 그밖에 어떤 것도 바뀌지 않았다. 행정관료들로 채워지기는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오늘날 학예실과 비슷한 어감의 조사연구과는 1978년 폐지되기까지 과장의 공석과 함께 실적 전무를 과시하고 있었다. 특히 전시업무를 비전문 행정관료로 구성된 전시과가 맡았는데 이는 대한민국미술전람회 개최만을 염두에 둔 기계적 발상이었다.
국립현대미술관이 덕수궁과 인연을 맺은 것은 박호준(朴琥儁) 제5대 관장시절인 1973년 7월이다. 비좁고 외진 건물을 벗어나 넓은 덕수궁 석조전을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대한민국미술전람회 개최 공간 확보 때문이었다. 경복궁의 총독부미술관은 날로 늘어만 가는 대한민국미술전람회 출품작을 수용하기에 좁았다.
이러한 때, 그 때까지 덕수궁 석조전에 자리잡고 있던 국립박물관이 경복궁 신축 건물로 이전했다. 이에 따라 국립현대미술관은 덕수궁 석조전으로 자리를 옮겨갈 수 있었다.
계기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국립현대미술관은 이 때를 미술관으로서의 기형성을 탈피할 수 있는 절호의 계기로 삼아야 했다. 다시 말해 현대미술관의 정체성을 살려나가는 목적을 정립하고 인원 및 예산을 확보함으로써 충실한 운영을 통해 현대미술의 발전을 꾀했어야 했다는 뜻이다. 그러나 개관 때도 그러했듯이 대한민국미술전람회 개최 공간의 효율성 이상을 헤아리는 경우는 없었다.
덕수궁 석조전에 자리잡은 국립현대미술관은 대한민국미술전람회와 원로작가 집단 및 개인전 그리고 몇몇 기획전 따위를 개최하는 단순한 전시공간으로 운영되어 나갔다. 또 작품 구입과 기증을 통한 소장품이 약간씩 이뤄졌다. 다시 말해 지지부진한 상태였지만 점차 미술관의 모습을 갖춰나갔던 것이다.
또한 거듭되는 20세기 근현대 작품전으로 말미암아 국립박물관이 지니고 있었던 이른바 옛 미술의 기운을 씻어내면서 근대 또는 현대 미술의 전당이라는 정체성을 만들어 나갔다.
그와 같은 정체성은 주로 기획전람회가 거듭되는 과정에서 쌓여갔다. 덕수궁석조전으로 옮기면서 연 첫 전람회인 이전 기념전 《한국현역화가 100인전》은 당시 현역 수묵채색화가 32명, 유채화 81명 모두 113명의 113점으로 이뤄졌다.
그 뒤 이와 같은 성격의 전람회가 계속 이어졌고 손석주(孫碩柱) 제6대 관장시절인 1975년 12월에는 1974년에 세상을 떠난 김환기 회고전이 열림으로써 첫 개인전을 시작했다. 특히 1977년 2월에는 화가, 유족, 소장가들이 기증한 14명 22점으로 꾸민 《기증작품특별전》을 개최함으로써 소장작품 기획전이 처음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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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치오(尹致五) 제7대 관장시절인 1978년 11월에 열린 《한국현대미술20년의 동향전》은 전후 한국 현대미술의 주요 흐름을 보여주는 특별한 기획전이었다. 이 기획전은 한국미술협회와 공동주최를 함으로써 객관성을 부여하는 형식을 취하였는데 참여작가를 시대별로 구획하여 50-60년대에 27명, 60-70년대 26명, 70년대 69명 모두 122명을 선정, 이른바 미술사의 관점을 적용하였다.
또한 1979년 9월과 1980년 6월에는 연속기획전을 꾸몄는데 60명 156점으로 꾸민 《한국현대미술-1950년대 서양화전과 89명 162점으로 꾸민 한국현대미술-1950년대 동양화전》이 그것으로 이 전람회는 특정한 시대를 지목하여 해당 작가를 선정함으로써 해당 시기 성격과 특징을 미술사적으로 접근하는 방법을 취하였다.
전문 학예사가 없는 미술관이었으므로 규정에도 없는 관장 개인의 자문위원을 활용하여 기획, 작가선정, 전시방법을 수립하는 비정상적 운영에도 불구하고 그나마 당대의 역사적 가치 평가가 이뤄진 작가를 대상으로 하는 전람회는 국립현대미술관의 정체성을 세워나가는 유일한 근거였다.
연이은 미술사적 접근 중심의 대규모 기획전이 이어지면서 덕수궁 국립현대미술관은 대한민국미술전람회 수행기관의 성격을 벗어나 점차 현대미술의 중심이라는 위상을 확보해 나갔고 동시에 덕수궁석조전은 한국현대미술의 중심이란 정체성을 강화해 나갈 수 있었다.
이것은 식민지 시절 덕수궁석조전이 한국 옛 미술과 일본 근현대미술 중심으로 운영되어 왔고 또 전후 국립박물관으로써 식민지 일본미술관 또는 한국 옛 미술 중심의 고대박물관이란 성격을 벗어났음을 뜻하는 것이다.
비로소 덕수궁은 참된 의미에서 당대 한국 미술의 중심이자 미술사 가치를 중심에 두는 미술관으로서의 면모와 더불어 정체성과 상징성을 갖춘 기관으로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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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경복궁 총독부박물관 시절의 국립현대미술관 전람회는 1970년 5월 《한국현대미술연합전》, 1972년 6월 《한국근대미술60년전》을 개최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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