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I. 본 문
5.직제의 비전문성
국립현대미술관은 1972년 7월 대통령령에 따른 직제 개정으로 서무과와 조사연구과, 전시과로 재편되었다. 낱말로 보면 조사연구과는 오늘날 학예연구실과 비슷한데 이 때 각 과의 업무분장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 업무분장
1) 서무과
1. 보안, 관인관수, 문서, 인사, 예산, 회계, 관람 및 재산관리에 관한 사항
2. 전시실의 대여에 관한 사항
3. 다른 과의 소관에 속하지 아니하는 사항
2) 조사연구과
1. 미술자료의 수집, 조사 및 발간에 관한 사항
2. 미술작품의 국제교류에 관한 사항
3. 구입할 미술작품의 선정에 관한 사항
4. 현대미술의 연구, 발전에 관한 사항
3) 전시과
1. 미술작품의 전시에 관한 사항
2. 현대미술의 창작에 관한 사항
3. 미술작품의 보관, 관리에 관한 사항
4. 전시실의 관리 운영에 관한 사항40)
이 규정에 따르면 조사연구과는 반쪽 학예실이었다. 나머지 반쪽은 전시, 보관, 관리를 담당하는 전시과로 넘어가 있었다. 이런 반쪽 짜리 직제 개정에도 불구하고 조사연구과 과장은 공석이었고 1978년 8월 직제 개정 때엔 조사연구과를 아예 폐지해 버렸다. 최초의 출발부터 전시과가 전시, 연구, 교류, 발전에 관한 사항을 담당하였으므로 조사연구과가 별도로 필요치 않았을 것이다.
조사연구과를 폐지할 때 그 대안으로 미술관은 학예직 6명을 직제개정안으로 제출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저 제출했을 뿐 실제 채택되지는 않았다. 대신 미술관에서는 1980년부터 전문위원 제도를 도입해 미술관 운영에 참가시켰다. 비정규직으로 책임과 권한도 없이 관장의 요청에 따른 자문과 조언에 머무른 것이지만 비전문 관료로 채워진 미술관에 그나마 전문 지식과 판단이 개입할 여지를 공식화한 것이었다.
그와 같은 비전문시대의 종지부를 찍은 것은 1981년 8월 18일 미술평론가이자 미술사학자 이경성(李慶成)이 관장에 취임하면서부터였다. 이경성 관장은 일찍이 1945년부터 인천시립박물관 관장을 역임한 경험이 있고 또 이화여대 박물관과 홍익대 현대미술관, 박물관을 창설해 낸 주역이었으며 현역 미술평론 활동은 물론 홍익대학교 대학원 미학미술사학과 창설 초대 과장으로 활동한데서 보듯 미술관에서 필수라 할 미술사학 분야에서 업적을 쌓은 전문가였다.
그러나 이경성 관장은 자신 이외에 다른 전문 미술인을 채용할 수 없었다. 이경성 관장은 발령을 받자마자 문공부 장관에게 큐레이터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관에게 강력하게 주장한 것은 큐레이터들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국립이라 하더라도 현대미술관은 단순한 관청이 아니기 때문에 그 건물과 작품을 잘 이용해서 운영할 수 있는 유능한 큐레이터가 필요하다. 그런데 당시 전문직으로서는 오광수와 김지현 두 사람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우선 자리가 허락하는 대로 대학 또는 대학원에서 미학, 미술사를 전공한 사람 중 우수한 사람을 큐레이터로 뽑고 그들을 외국의 유명한 미술관에 연수 보내서 전문적인 지식을 획득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것을 이해한 이규현 장관은 적극적으로 도와주겠다는 언질을 주었다.”41)
그러나 실제로 학예사를 채용할 직제가 없었으므로 전문가인 관장의 판단에 따라 전람회 기획이 이뤄질 뿐이었다. 이경성 관장은 취임한 뒤 몇 가지 개혁을 단행했다. 대여전시장 구실만 하고 있던 국립현대미술관 동관을 독립시켜 상설전시실로만 사용하도록 하고 대여전시나 기획전은 서관만을 사용하도록 조치하였다.
그리고 이경성 관장은 미술관 건물 신축 계획을 수립했는데 과천 서울대공원에 건립하기로 결정하는 일을 주도했다. ‘야외조각장을 겸비한 미술관’이란 개념을 갖고 시작한 터였으므로 과천의 넓은 부지를 선택했고 착공에 들어가 1986년 8월 25일 준공하기에 이르렀다.
이경성 관장은 1983년 여름 『계간미술』지에 일제식민잔재청산 관련 글을 발표했는데 관련 원로화가들이 들고 일어나자 문공부 이진희 장관이 관장을 불러 원로화가들과 타협을 종용하자 사퇴하고 말았다. 신 군사 독재정권의 미술문화정책과 화가들의 식민성은 물론 미술관을 바라보는 의식의 상태를 잘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
40) 『과천 이전 10주년 기념 사료집 국립현대미술관 1969-1996』, 국립현대미술관, 1996.
41) 이경성, 『어느 미술관장의 회상』, 시공사, 199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