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모더니즘과 리얼리즘 : 형식주의의 인식론적 지평과 올바른 예술방법의 단초.

심광현(서울미술관 기획실장)


Ⅰ. 머릿글
Ⅱ. 포스트모더니즘
    1) 미적 질서와 개념에 있어서의 단절
    2) 포스트모더니즘의 인식론적 방법론과 자기 모순 -
        후기 구조주의와 해체론

    3) 지식(또는 인식)과 권력
    4) 권력에 익명성과 주체의 부재
Ⅲ. 리얼리즘
    1) 권력의 도구로서의 재현
    2) 포스트모더니즘 소비사회
    3) 구체적인 사회생활로서의 역사에로의 복귀
    4) 리얼리즘의 방법과 예술의 진보성

전 망

1) 미적 질서와 개념에 있어서의 단절

목적으로서의 순수성, 결과로서의 형식적 법칙, 전개로서의 역사주의와 맥락으로서의 미술관, 독창적인 작가와 유일무이한 작품, 이것들은 모더니즘이 특권을 부여해온 용어 들이며 포스트모더니즘이 제시하는 것과는 대립된다.

포스트모더니즘에 있어서 그것들은 현재로서는 그 생명이 고갈되어버린 행위에 불과한 것으로서, 그런 행위의 인습성은 더 이상 의미를 지닐 수 없게 된다. 포스트모더니즘의 미술은 순수성에 사로잡혀 물화되어 버렸던 모더니즘의 모더니즘의 매체들 사이에, 그 너머에, 흑은 그들 밖에서, 또는 새로운 아니면 무시되었던 매체들(비데오나 사진) 속에 존재한다.

`미술'이라는 대상이 미술관에 의해 역사화되고 화랑에 의해 상품화되어 중성화되어버린 까닭에, 포스트모더니즘의 미 술은 그에 대한 일종의 대안적 공간에서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 예술의 영역이 일정하게 변화함에 따라 작가의 역할도, 미학적 의미도 변화하게 되었다.

로잘린 크라우스(Rosalin Krauss)에 의하면, 포스트모더니즘 조각은 매체라든가 양식의 역사적 전개라는 맥락에 의해서는 모더니즘 조각과 명백히 구별되지 않으며, 다만 문화적 맥락에서의 형식들의 논리적 운영이라는 차원에서만 그 특수성이 이해될 수 있다고 한다.

말하자면 포스트모더니즘은 매체라든가 역사적 맥락이라는 맥락이 아니라 오직 추상적인 문화적 논리라는 맥락에서 모더니즘과 단절을 이루고 있는 셈이다. 그러한 단절은 이제 모더니즘의 문화공간을 폐쇄시켜 버린 후 동시에 포스트모더니즘의 문화적 공간을 개 방시켜 주는 것처럼 보인다.

크라우스에게 있어서 포스트모더니즘 미술의 징후가 미술영역(조각영역)의 확장이라면, 더글라스 크림프(Douglas Crimp)에게 있어 그것은 `작위성'(theatricality) (모더니즘 말 기에는 금지되었었던)에로의 복귀이며, 또한 크레이그 오웬스(Craig Owens)의 경우에는 `언어의 분출'이자 `알레고리적'인 또는 `해체적인' 충동이다. 미닌멀 조각의 `작위성' 에 반대했던 마이클 프리드(Michael Fried)와는 달리 크림프는 (그림들)이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대부분의 이런 작가들이 미니멀리즘에서 쟁점이 되었던 퍼포먼스의 영 역에서 영향을 받았다 해도 그들은 고것의 우선 순위를 뒤바꾸기 시작 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있는 그대로의 상황과, 연출된 사건의 지속을 지극히 심리학적으로 다루어진 하나의 그림(tableau)으로 만든다. 결국 퍼포먼스는 오로지, 그림을 연출하는(staging) 많은 방법들 중의 하나가 된다. "

또한 오웬스는 모더니즘적 시각예술이 억압해왔던 '담화의 출현'이 포스트모더니즘 미술에서 현저해지는 점에 주목한다.

"언어가 미의 영역으로 분출-스미드슨, 모리스, 앙드레, 주드, 플래빈, 라이너, 르윗에 의해 드러나는-된다는 것이 포스트모더니즘의 출현의 결정적인 지표는 아니라 하더라도(적어도) 그와 상옹하는(성질의) 것 이다. 이러한 '격변'은 미의 영역을 특별히 구분되는 분야로 갈라 놓았던 모딕니즘 회화의 안정상태를 뒤흔들어 버렸다.

가장 깊이 충격받았던 것 중의 하나는, 문학행위를 정체되어 있는 시, 소설, 수필(‥‥) -고유의 영토에서 끌어내어, 미적행위의 전체 영역에 걸져 분산시켜 버린 것이다.

" 오웬스는 미니멀 아트에 잇따라 발생하는 작품들(콘셉츄얼 아트, 스토리 아트, 특정위 상의 아트 site-specific art)을 과거의 작품처럼 어떤 오브제와 결부된 한정성을 띈 것으 로서가 아니라 일종의 가변적인 텍스트적인 것(textual)으로 간주한다. 이 경우 "텍스트란 단일한 '신학적' 의미(신과도 같은 저자의 메시지라는 점에서)를 방출하는 말의 배열이 아니라, 어떤 것도 원형적(original)이지 않은 수많은 저서들이 흔합되고 상충하는 하나의 다차원적인 공간이다. " 이러한 텍스트성(textuality)에 의할 경우, 궁극적인 의미나 원저자의 독창성(originality)이 사라지는 대신 다의미적으로 조직된 유동하는 약호들과 유일한 의미의 창조자로서의 예술가의 '죽음'이 함축되어진다.

따라서 포스트모더니즘의 노선은 후기구조주의의 노선과 그 맥을 같이 하는데, 이는 양자가 공히 약호화된 문화를 기술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후기구조주의적 미학은‥‥모 더니즘적 범례의 소멸을 의미한다-신화와 상징, 순간성이 고정됨에 따라 유기적 형식과 구체적 보편, 주체의 자기동일성과 언어적 표현의 지속성‥‥그것들이 전략적으로 '텍스트' 흑은 '기술체'(ecriture)로 재편되면서 비지속성, 알레고리, 기계적인 것, 기의와 기표간의 간극, 의미의 소멸, 주체의 체험의 상실이 강조된다." 여기서는 이제 낡은 기호가 다시금 새로운 논리로 다루어지며, 예술가는 여러형태의 수사학을 변형, 조립시키고 또 조작하는 정교한 수사학자가 된다.

크림프에게 있어서 문제는 모더니즘적 자율성이 아니라 '재현의 충위'(strata of representation)이며, 근원이나 원천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작용외 구조가 추구된다. 각각의 그림의 저변에는 언제나 또 다른 그림이 놓여져 있다. 결국 모 더니즘의 미적 한계는 인용, 발췌, 구상, 각색 등의 전략을 통해 초월되며, 그에 따라 꽉 짜여졌던 매체들뿐이 아니라 표현과 해석의 수준들도 서로 상충된다.

이렇게 해서 대상 그 자체가 변화되며, 포스트모더니즘의 미술은 어떤 하나의 형태나 매체, 또는 위치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간의 다차원적 관계의 그물망 내에서 불확정한 상태로 유 동하게 되고, 그만큼 주체(관찰자)도 혼란되고, 모든 예술의 확정적인 질서도 분열된다. 이와 같이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의 미적 질서와 개념들과의 단절로서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