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모더니즘과 리얼리즘 : 형식주의의 인식론적 지평과 올바른 예술방법의 단초.

심광현(서울미술관 기획실장)


Ⅰ. 머릿글
Ⅱ. 포스트모더니즘
    1) 미적 질서와 개념에 있어서의 단절
    2) 포스트모더니즘의 인식론적 방법론과 자기 모순 -
        후기 구조주의와 해체론

    3) 지식(또는 인식)과 권력
    4) 권력에 익명성과 주체의 부재
Ⅲ. 리얼리즘
    1) 권력의 도구로서의 재현
    2) 포스트모더니즘 소비사회
    3) 구체적인 사회생활로서의 역사에로의 복귀
    4) 리얼리즘의 방법과 예술의 진보성

전 망

2) 포스트모더니즘 소비사회

프레데릭 제임슨은 「포스트모더니즘과 소비사회」 (1982)라는 글에서 포스트모더니 즘적 현상들의 중요한 특징들을 (모조) (또는 재탕 pastiche)와 (정신분열증) (schizoph- renia)이라는 두 개념으로 압축하여 예시하면서, 이런 특징과 현상들이 바로 1960년대 이후 두드러지게 부상되는 서구 후기자본주의의 새로운 사회질서의 내적 진리를 표현해 준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에게 있어서 포스트모더니즘은 특정한 양식을 기술하기 위한 용어가 결코 아니다. 그것은 적어도, 하나의 시기구분의 개념으로서 이해되며, 그 기능은 새로운 유형의 사 회생활과 경제질서-즉 종종 후기산업사회 또는 소비사회, 미디어사회 또는 스펙타클 사회, 혹은 다국적 자본주의라고 불리우는-의 대두와 문화에 있어서의 새로운 형식적 특징들의 대두를 서로 상관시켜 주는 데에 있다고 간주된다.

자본주의 사회의 새로운 변화의 계기가 발견되는 시기는 미국에서는 1940년대말 또는 1950년대 초까지, 그리고 프랑스에서는 제5공화국의 수립시기였던 1958년까지 소급될 수 있다. 1960년대는 여러 측면에서 볼때 중요한 이행기였는데, 그것은 새로운 국제질서(신식민주의, 녹색혁명, 컴퓨터와 전자정보의 시대)가 동시에 설정되면서 그 내적 모순과 외적 저항에 치해 동요되던 시기였다.

그것은 새로운 유형의 소비와 계획적인 폐기, 매우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유행과 양식의 변화, 전사회에 걸쳐 유례없는 속도로 침투되는 광고와 TV, 그리고 미디어, 도시와 농촌, 중심과 주변 사이의 낡은 긴장이 보편적인 표준화에 의해 대체되는 현상을 야기했고, 거대한 그물망의 고속도로가 증폭되고 자동차문화의 도래를 초래하게 하였으며, 이러한 현상들은 전성기 모더니즘(high modernism)이 여전히 저 항세력으로 존재하고 있었던 과거의 戰前 사회와는 급격한 단절을 나타내주는 특징들의 일부를 이루는 것들이었다.

말하자면 우리가 앞장에서 지속적으로 기술해왔던 포스트모더니즘의 다양하고 복 합적인 의미화의 메카니즘과 특징들-데리다, 푸코, 오웬스, 크림프, 바르트 등의 논의 에서 보여졌던-은 단순히 문화적 맥락과 논리의 새로운 운용이라는 추상적인 인식론적 합의만을 갖는 것만이 아니라, 1960년대 이후 새롭게 등장한 서구 '후기' 자본주의 사회의 사회, 경제적 질서의 새로운 내용들과 구체적으로 깊은 연관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제임슨은 다른 사람들처럼 심연 위의 벼랑에 선 아포리아에서 현기증을 느끼는 대신 그 심연의 구체적 내용을 상세하게 분석하고 있다.

우선 그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주요한 관행들과 특징들을 (패스티쉬)의 개념을 통해 설명하는데, 이런 식의 (모조) 행위는 통상(패러디)라는 형식을 통해 모더니즘이나 그 이전의 수많은 예술양식 속에서도 흔히 발견된다고 그는 보고 있다. 그러나 포스트모 더니즘에서 보여지는 모방행위인 (패스티 쉬)는 다른 스타일의 모방, 또는 다른 스타일의 양식적 차용이라는 점에서 외적으로는 그 이전의 패러디와 유사점을 지니지만, 그 내적 연관에 있어서는 (패러디)와 큰 차이를 지닌다.

(패러디)의 경우에는 본래의 원전(the original)에 대한 은밀한 공감이 남겨져 있다. (패러디)를 이용하는 모더니스트 미학에 서는 원전(the original)이 지닌 독창적인 자아와 사적인 동질성, 유일무이한 개성과 인격성에 대한 모종의 연결이 존재한다. 따라서 (패러디)의 경우에는 이런 독창적 양식에 대한 매너리스트적인 표절이 지니는 사적인 성격에 대한 조롱과 풍자의 효과가 남겨져 있으며, 이러한 웃음을 가능케 해주는 언어학적인 일반적, 정상적 규범이 하나의 기준 점으로 존속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이 일반적인 정상언어와 그것의 의사소통적 힘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경우,모든 것이 파편화되어 버리고 사적인 것으로 화해버린다면, 더 이상 사적인 언어와 개성적 스타일을 풍자할 수 있는 일반적인 정상적 규범이 존재하지 않게 된다면 (패러디)는 불가능해진다.

한때 혜게모니적인 사회계급으로서 부르조아가 활동하고 있던 전성기의 경쟁적 자본주의 시대에 존재했던 과거의 개인주의적인 부르 조아적 주체가 더이상 존재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되는 현대의 국가독점 자본주의 시대를, 심지어는 부르조아 개인주의로서의 주체라는 것 자체도 애당초 존재해본 적이 없다고 주장하는 후기구조주의자들의 "주체의 죽음"의 논의를 고려해 본다면, 이런 변화는 쉽게 설명될 수 있다. 그럴 경우 미학적 딜레마가 남게 된다.

독창성을 발휘할 수 없는 시대인 현대의 예술가에게 남겨진 것은 단지 과거의 죽은 모델들의 모방일뿐이다. 어느 누구도 과거처럼 유일무이한 사적 세계와 그것을 표현할 개성적 양식을 더 이상 지닐 수가 없다. 양식적 혁신이 더 이상 불가능해진 세계에서 남겨진 것이라고는 단지 과거의 죽은 스 타일을 모방하고, 가면을 통해서 이야기 하며, 상상적 미술관 속에 있는 다양한 양식들의 소리로 이야기 하는 것일 뿐이다.

이것이 포스트모더니즘의 (패스티쉬)이다. 따라서 모더니스트 미학의 전통 전체의-이제는 죽어버린-거대한 무게가 "살아있는 자의 뇌 속을 마치 악몽처럼 짓누르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포스트모더니즘의 예술은 과거 속에 갇히게 된다.

다른 한편 포스트모더니즘의 두번째의 기본 특징으로 간주되는 (정신분열중) (schizo- phrenia)의 현상들은 라깡(Lacna)의 정신분석학의 개념을 빌어 분석된다. 라깡은 프로 이드의 정신분열의 개념을 재구성하여 그것을 언어적 무질서라고 독창적으로 해석하 였다. 라깡은 구조주의의 토대 위에서 기호, 말, 그리고 텍스트를 기표(signifier)와 기의 (signified)의 관계로서 모델지웠다.

물론 제3의 요소는 소위 지시물, 실제 세계의 실제 사물이 되겠지만 구조주의 일반은 지시물을 일종의 '신화'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이는 의미화 과정에서 아예 배제된다. 따라서 우리가 문장을 읽거나 말을 들을 때, 전체 의미(기의)는 단어들 또는 기표들의 상관관계로부터 파생되게 된다. 이런 맥 락에서 볼때 정신분열증이란 기표들의 연속적 상관관계가 단절되는 경우를 의미한다.

달리 말하면 정신분열적 경험이란. 고립되고 절단된 불연속적인 물질적 기표들에 대한 경험이며, 따라서 이는 정상인보다도 일단 주어진 현재 세계에 대해 더욱 강렬한 체험을 갖게 된다. 정신분열환자는 현재의 주어진 세계를 다른 세계, 다른 시간 경험과의 복 잡하게 분절된 관계 속에서가 아니라 고립된, 무차별적으로 혼효된 상태로서 체험하게 된다.

그 결과 시간적 연속성이 단절되고 현재의 경험이 생생하고 압도적으로 "물질적" 으로 증폭된다. 그와 동시 에 정상인들에게는 바람직한 경험으로 느껴지는 것이 여기서는 "상실", "비현실"로 느껴지게 된다. 결국 의미가 상실됨에 따라 기표들의 물질성이 과 도해지게 된다. 기의를 상실한 기표가 그렇게 해서 하나의 이미지로 변형된다.

제임슨은 이러한 사태들을 개괄적으로 (역사감각의 소멸)이라고 요약한다. 현대의 사회체제 전체가 점차 자신의 과거를 보존할 능력을 상실하면서 우리는 (영구적인 현재) 속에서 살게되며, 이전의 다른 모든 사회구성체들이 이런저런 방식으로 보존해야만 했었던 전통을 망각시키는 지각 변화속에서 살기 시작하게 된다. 뉴스와 미디어의 흥수는 최근의 역사적 경험들을 가능한한 빠른 속도로 과거 속으로 추방한다.

미디어의 정보적 기능이 우리의 망각을 도와주는 것이며, 우리의 역사적 기억상실을 위한 대리인과 메 카니즘으로 봉사하는 셈이다.

제임슨의 분석을 개괄적으로 수용해본다면 소위 '후기자본주의'의 포스트모더니즘 문화는 한편으로는 과거 모더니즘의 찬란한 엘리트주의의 죽은 모델들의 증압에 눌려 그것의 재탕과 모방에 급급할 뿐이며(패스티쉬), 다른 한편으로는 과거와 역사에 대한 기억상실 속에서 미디어와 광고로 가득찬 상품사회의 쾌락을 소비하는 데에 물두한다고 (스키쪼 프레니아) 하는 이중의 질곡 사이에 끼여있는 셈이 된다.

그것은 실재를 이미지로 변형하고, 시간을 영원한 현재의 연속으로 파편화시키는 과정으로서, 이렇게 해서 거꾸로 포스트모더니즘의 문화는 후기자본주의의 상품생산과 소비의 논리를 그 자체로서 복 제하고 또한 재생산하게 되는 셈이다.

푸코가 재현의 메카니즘이 사회 도처에 산포되어 있는 권력의 투시성에 의존하고 있다고 본 그 지점을 제임슨은 1960년대 이후 서구 후기자본주의 사회의 상품생산콰 소비 메카니즘의 복제와 재생산으로 설명해낸다.

우리는 이러한 분석들을 통해-바르 트와 데리다를 넘어서서-텍스트를 넘어 권력으로, 그리고 추상화된 관계망으로서의 권력을 넘어 좀더 구체적으로 자본주의의 상품생산과 소비의 논리와 메카니즘에까지 도달하게 된 셈이며, 또한 이렇게 해서 해체론의 쾌락주의적인 불가지론을 넘어 주체적인 역사인식의 리얼리즘으로 한걸음씩 다가서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