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모더니즘과 리얼리즘 : 형식주의의 인식론적 지평과 올바른 예술방법의 단초.
심광현(서울미술관 기획실장)
3) 지식(또는 인식)과 권력
`통상적'인 역사는 어떤 하나의 중심을 상정하고 그 둘레로 모든 현상들을 끌어다 붙이는
전체화하는 역사이다. 그것은 연속성, 인과율, 목적론 등의 개념으로 깊이 채색되어 있는
역사이다. 그에 반해 푸코가 보는 역사는 방산(攷散)의 공간으로서 갖가지 현상들이 어느
한 곳을 향해 결집되거나 그와 유사한 관계구조를 드러내지 않고 단지 흩어져 있을 뿐이다.
이것은 데리다가 개진하는 언어와 의미의 불확정성의 이론에 정확하게 부합한다. 씨니피앙
대신에 현상이란 용어를 끼워넣으면, 데리다의 텍스트 개념은 곧 푸코의 역사개념에 해
당된다고 할 수 있다. 데리다의 주장을 극한으로까지 밀고나간 예일학파의 비평가들은
텍스트성을, 그 속에서 어떠한 의미도 알 수 없고 결정할 수 없는 (밑없는 광대한 심연)과
같은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푸코는 이 공간 내부에서 발견되는 한 묶음의 규칙 즉
에피스테메(episteme)에 의해 그 방산의 공간도 일정하게 규정되어질 수 있을 것으로
믿었다. 하지만 이 에피스테메는 기존의 역사에서 볼 수 있는 하나의 중심, 단일개념 혹은
초월적 의식과는 분명히 다르며, 갖가지 성격이 다른 요소들을 포함한 이질적인, 따라서
`문제적'인 단일체이다. 그리고 그것은 역사의 움직임에 따라 변하고 사멸한다.
하지만
결국 에피스테메는 구조주의적 사고방식에 의해 상정된 개념적 단일체이며, 각시대의
역사적 충족성을 설정하는 위장된 형이상학적 용어라는 점이 밝혀지게 되며, 푸코의 언
술행위이론(theory of discourse)은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강조점을 이동시킨다. 즉
언술행위는 에피스테메에 기초한 법칙에 따라 자율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실천행위로 인식된다는 것이다.
푸코는 1977년의 대담 「진실과 권력」에서 이러한 변화를 자기비판의 형식으로 잘 요
약해주고 있다. 그는 자신이 「말과 사물」 (1966)에서 다루려 했던 것이 바로 불연속성에
의해 생겨나는 상이한 체제(regime)들이었는데, 그때는 그 체제가 갖는 특유한 힘의 효과를
깨닫지 못하고 그것을 체계성, 이론적 틀, 혹은 패러다임과 같은 것으로, 즉 에피스테메와
혼동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 결과 지식의 형태를 바꾸게 하는 것은 결국 권력의 문제였음이
드러나게 되었다. 그 자신이 이전에 운용했던 고고학이 역사에서 배제되거나 주변으로
밀려난 국부적 사실들을 찾아내고 분석하는 방법이라면, 새로운 계보학은 그런 작업을
토대로 해서, 이성적이고 과학적인 진리 혹은 지식이라는 것의 기원이 사실은 지배와 종속,
여러 세력 사이의 관계 즉 권력에 뿌리박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며, 또 억압된 지식이
지배전략의 지식에 대해 반대하고 투쟁할 수 있게 해주는 디딤돌이 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해체작업 이후에 그가 부딪치게 되는 것은 권력의 의지들의 `유희'이다
따라서 불변적인 것, 근원적인 것들이 모두 해체된 터에 각각의 권력의 의지가 진리의
체제로 내세우는 것은 각기 자기나름의 지배를 위한 `해석'에 불과하게 된다.
현실은
언술행위에 의해 `반영'된다기 보다는 오히려 언술행위에 의해 `구성'되기 때문에 하나의
해석은 현실에 대한 해석이 아니라 다른 해석들에 대한 또 하나의 해석일 뿐이다. 이처럼
모든 해석에는 사실 정당한 보편적 근거가 없으며, 따라서 어느 해석이 다른 해석보다
올바르다고 말할 수 없게된다.
아마도 유일한 근거가 있다면 그것은 각 시대의 권력의
의지일 뿐이리라. 그에게 있어서 역사란 언어와 기호들이 아니라 전쟁과 전투의 모델로
보여지며, 우리를 끌고 가며 결정하는 역사는 씨니피앙과 씨니피에 사이의 의미관계가
아니라 그 너머에 존재하는 권력의 관계들로 보여진다.
역사는 수많은 권력에의 의지들이
언술행위와 진리를 두고 각축전을 벌이는 해석의 유희였다. 따라서 그에게 있어서 역사는
부조리하거나 일관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자체로서 객관적인 (의미)는 없다. 단지
있다면 (지배전략)으로서의 (의미)가, 또한 (지배전략)으로서의 (진리)가 있을 뿐이다.
그에게는 역사가 바로 텍스트의 공간이었다.
처음에 그는 그 광대무변한 공간에서 형식적인
규칙들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러나 언술행위를 우리가 사물과 세계에
가하는 일종의 폭력행위 즉 권력을 장악하기 위한 사회적 실천행위로 파악하면서부터
그는 그같은 형식적 규칙 대신에, 권력에의 의지들간의 언술행위를 둘러싼 유희와 전투의
전개과정을 탐색하게 되었다.
푸코가 데리다의 텍스트성을 넘어서서 마주치게 된 것은 바로 권력의 의지와 역사의
폭력이었다. 이 지점에서 그의 해체론은 다른 후기구조주의자들이 탐닉했던 끝없는 오
르가즘의 유회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해체론의 벼랑 위에서 그가 바라보게 된 것은 막연한
심연이 아니라 권력과 폭력으로 가득찬 전장이었다. 바로 이 지점에서 그는 후기구조주의
또는 해체론 전반에 내재한 이론적 모순의 실체에 접근하게 된다. 그는 그 모순을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생리학의 법칙을 따르고 역사의 영향과는 상관이 없는 것처럼 생각되어왔던
육체에서까지도 사실은 그것이 각기 특징적인 수많은 권력의 지배체제를 거치면서 형
성되어 왔기 때문에 마치 그것이 하나의 역사인 것처럼 과거의 수많은 이질적인 폭력의
혼적들이 육체 속에 남아 있는 것에 주목한다.
그가 보기에 권력은 항시 스스로의 모습을
감추고 권력이 아닌 것, 즉 인간적인 학문이나 개인적인 자기인식의 가면을 쓰고 나타나기
때문에, 그리고 그것은 단 하나의 모습이 아니라 수많은 소단위의 권력(예를 들면 군대,
학교, 병원등)으로 분산되어 나타나기 때문에, 개개인을 그들 자신도 모르게 지배, 속박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한다.
푸코의 계보학은 권력의 행사가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간에 권
력으로부터 단절된 지식은 없으며, 만약 권력과 아무 관계가 없다는 태도를 보이는 지식은
위선이나 오류라는 점을 분명하게 밝힌다. 권력을 분석하는 그 자신의 작업 역시 권력과
지식의 연관관계를 벗어나는 것이 아니다.
이때문에 푸코 역시 지식과 권력의 이질적인 대립과 모순관계 속에 놓여지게 되는
셈인데, 중심, 기원, 목적과 같은 어떤 형태의 절대적 가치도 분쇄하고 모든 것을 역사적으로
파악하려는 탈구조주의자의 일원으로서 그 자신 역시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이로 인해
그는 자신이 결코 이성과 진리를 대변하는 사람, 즉 (보편적 지식인)이 아니라 특정분야를
전문으로 하는 (특수한 지식인)일 뿐임을 밝힌다. 특수한 지식인으로서 그에게 중요한
것은, 권력의 본질이 어떠한 것인가, 누가 권력을 행사하는가 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의
섬세한 메카니즘이 어떻게 작동하는가, 권력이 지배를 위해 사용하는 구체적인 기술과
전술은 어떠한가를 살피는 것이다.
이러한 탐구를 토대로 그가 할 일은 "현재 지배권의
여러 형태 -즉 사회적, 경제적 그리고 문화적 형태들 -속에서 작동하고 있는 진리의 권력을
그 지배권의 여러 형태로부터 떼어내는 것" 이며, 달리말하자면 현재의 체제 속에서의
권력의 균형을 바꾸려고 노력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