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모더니즘과 리얼리즘 : 형식주의의 인식론적 지평과 올바른 예술방법의 단초.
심광현(서울미술관 기획실장)
4) 리얼리즘의 방법과 예술의 진보성
세계와 인간에 대한 리얼리즘적인 태도는 관념론의 태도와는 달리 현실의 제과정을
항시 대립물의 투쟁과 통일이라는 변증법적 '운동'의 과정으로 이해한다. 이러한 역동적
과정 속에서 발생하는 모순을 회피하지 않고 이를 전면적으로 인식하는 주체의 인식과
실천과정에서 사회적 생활의 생생한 모습이 포착될 수 있다.
예술 창조의 출발점은 사회적 생활 가운데에서의 구체적인 것, 개별적인 것들이다.
왜냐하면 그것을 기초로 해서 예술가의 두뇌 속에 구상이 형성되며, 그는 그것을 자신의
생활 경험, 자신의 다양한 인상의 풍부한 축적에 의해 예술형상으로 완성해내기 때문이다.
예술형상의-구상적이든 추상적이든-창조는 창조적 상상력의 작용이 없으면 어럽다는
점이 그 특수성이다.
그러나 상상력은 생활의 구체적 현상들과 생활의 합법칙성에 대한
깊은 연구와 예술가에게 고유한 진실에 대한 감각에 입각할 경우에만 을바른 기능과
역할을 수행해 낸다. 임의의 상상력에 의해 자의적 주관주의와 무정부주의 또는 불가
지론의 심연으로 매몰될 위험은 매순간 존재하지만 이러한 위험은 객관적인 사회적
생활세계의 진실을 올바르게 반영하려는 리얼리스틱한 태도에 의해서만 방지될 수 있다.
리얼리스틱한 태도를 견지하는 예술가는 (전형화)에 의해 진실, 생활현상의 의미, 그
근저에 깔려있는 내면적 법칙을 밝혀내지만, 형식주의자들은 관념론적 태도에 의거하여
도대체 (예술적 진실)이라는 문제제기 자체를 부당한 것으로 간주하며, 오직 예술가의
주관적 정서와 감각의 세계만을 문제 삼는다.
그들은 예술이 생활의 반영을 지향한다는
것 자체를 현실에 대한 굴복이라고 생각하며, (내적 자유)라는 미명 아래 현실과의 인연을
끊고자 한다. 이 때문에 이들이 만든 작품에는 생활의 진실이 존재하지도 존재할 수도
없다. 그러나 이러한 결과의 의미는 앞 장에서 자세히 살펴본 바와 같이 명백히 잘못된
것이다.
리얼리즘적인 예술형상에 있어서 (생활적 진실의 해명)은 핵심을 이루고 있다. 그것은
생활에 잠재한 논리와 그 심오한 합법칙성, 그 가운데에서의 일반적이고도 본질적인
것의 발견과 해명이다. 그러나 그것은 추상적인 보편적 이념의 상징화도 아니고 그렇다고
개별적 실례, 구체적 사례에 의한 도해도 아니다.
그것은 개별적인 것 속에서 나타나는
보편적인 것을 항시 개체적인 것을 매개로 형상화하는 것이다. 예술가는 이러한 원칙에
입각해서 각각의 형상이 세계의 새로운 측면을 풍부하게 반영하도록 무한히 노력하는
것이다. 예술은 한 개별적 인간의 내면에서 작용하는 다양한 의식의 '운동' 과정 뿐만이
아니라, 인간과 인간의 관계, 개별적 인간과 계급, 계급과 계급, 다양한 사회세력간의
관계, 인간과 자연의 관계까지도 묘사한다. 그러나 어떻게 묘사하는가 하는 것이 진정으로
문제가 된다.
예술은 여러가지 갈등, 개별적 인간 각각은 물론 사회적 관계의 총체 내에서 역동적이 고
중충적으로 복합되어 있는 모순적인 관계를 매개로, 또한 그 속에서 형성되는 인간들의
성격의 항쟁을 매개로 사회생활의 다양한 측면과 관련을 반영하는 것이다.
인간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생생한 관심을 각성시키는 것은 인간의 개성과 운명, 개별적 인간의 구체적
감각과 의식을 통해 비춰진 구체적인 자연과 사회일 뿐이며, 사회적 본질의 추상화 따위가
결코 아니다. 전형적 형상의 창조과정에 대해, 사회세력의 본질에 대한 추상적 개념을
처음부터 고안해내든지 흑은 '외부'에서 빌어와서 그 개념을 개별적 형상에 의해 의
인화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이런 식의 속류 사회학적 도식
주의는 졸렬하고 편협한 형상화를 초래할 뿐이다. 이런 식의 도해성은 예술가로 하여금
전면적으로 생활을 연구하지도 충분히 관찰하지도 않은 채, 완전히 사변적이고 형이
상학적인 방법으로 미래의 형상의 사회학적 도식을 만들게끔 오도한다.
그러한 도해성은
이미 고전주의에서도 충분히 발견되었으며, 여타의 많은 시대와 민족의 예술전통 속
에서도 쉽게 찾아질 수 있는데, 이는 예술의 내용을 현실의 새로운 측면이나 현상으로써
풍부하게 하려는 혁신적이고 진보적인 리얼리즘 예술형상화의 발전을 방해한다.
이러한 도식주의는 사회적 생활과정 그 자체 속에서 미적 이상의 정열을 발견해내는
예술가의 뜨거운 열정에 의해서만 극복되어진다. 그러한 정열은 불결하고 잔인하며 옳지
못한 것에 대한 비타협성을 견지하며, 자연주의적인 생태기술의 냉담한 사이비객관주
의와 철저히 거리를 두는 태도, 뜨거운 정열로 가득찬 생활세계 위에 군림하려는 방
관자적이고 엘리뜨주의적인 편협한 자세를 극복하는 적극적인 태도 속에서 생생하게
꽃피우게 된다.
리얼리즘 예술의 풍부함이 라는 것은 제형상의 상호관계의 복잡한 총체를
통해 맥맥히 관철되는 인간의 미적이상과 정열에 의해 구현되는 것이지 모종의 도식이나
일반 법칙만으로는 도저히 완전하게 실현될 수 없는 것이다. 바로 이런 점에 올바로
기초하지 않을 경우 내용과 형식의 긴밀한 통일이라고 하는 것도 공허한 미학적 담론에
불과하게 된다. 왜냐하면 내용과 형식의 조화라는 관계 자체는 생촬의 진실과는 위배되는
작품 속에서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내용과 형식의 통일이라고 하는 것이
작품의 예술적 가치의 중요한 필수조건이라고 해도 보다 중요한 가치는 우선 생활의
진실이 그 필수조건 자체의 본질적 토대를 이를 때에야 비로소 획득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생활의 진실은 따라서 주관적인 것도 추상적인 것도 아니며, 엄밀히 객
관적이며 구체적인 것이다. 참된 리얼리즘에 있어서의 구체성은 단순히 자기목적적이고
자족적인 것만이 아니다. 그것은 사회적 생활상의 역동적인 과정 속에서 인간의 정신적
시선과 감각을 그 한계 밖으로 끌어낸다.
이렇게 해서 객관적 현실의 다면적인 진실이
역사적으로 구체적인 사회적 인간의 정신생활 속에서 반영되고 공명되며, 또한 인간의
의식과 감각을 충만시키고, 나아가 인간의 개인적 체험의 범위를 넘어 사회적 실천의
보다 광범위한 규모에서 주위 환경에 그 진실을 각인시켜 놓는다. 이렇게 해서 리얼
리즘적인 예술형상은 물질적 생활과 정신적 생활의 심오한 변중법적 관련을 탐구하며
드러내 보여주게 된다.
이에 반해 형식주의 예술은 생활을 제멋대로 반영하고, 현실을 임의로 바꾸고, 마음껏
형식을 변형시키는 철저한 주관주의와 관념론을 궁극적인 근원으로 하고 있다. 형식
주의에는 객관적 진리란 없다. 그러므로 형식주의는 본성 그 자체로부터 예술적 진실을
거절하는 것이다.
그 결과 형식주의는 예술을 생활현실과 그 객관적 법칙으로부터 유
리시키고 맹목적이고 자의적인 주관성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다. 따라서 수많은 훌륭한
재능을 췌손시키고 파멸시키거나 비정상적인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
예술의 (패스티쉬)와 (징신분열적 양식)에 대한 프레데릭 제임슨의 분석을 상기해 볼
것). 물론 어떤 형식주의자들의 작품에도, 만약 그 재능이 완전히 쓸모없을 정도로까지
훼손되지 않는 한 어느 정도의 예술성이 유지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 경우에도
그것은 형식주의 덕분이 아니라 오히려 작가의 의식 내부에 각인된, 그에 반대하는
무의식적 경향에-생활의 진실-의해 성취된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제국주의 단계의
자본주의 사회, 그 마지막 단계인 후기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보수적이고 퇴폐적인 문
화예술에 있어서도 리얼리즘에의 잠재적 경향이 완전히 소진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리얼리즘의 올바른 태도에 입각해 볼 때, 예술은 그 본성 자체에서부터 객관적 세계에
대한 다각적이고 구체적인 관계의 모든 측면과 관계하고 있다. 그러한 다각적인 관계
로부터 형성되는 정서적 풍부함은 예술가로 하여금 현실의 매우 크고 복잡한 재료와
그에 대한 반영에서 형성되는 사상적 복잡함을 풍부하게 매개하도록 끊임없는 예술적
기량의 진보를 요구한다.
그러나 예술적 기량의 진보는 단순히 양식, 방법의 발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세계에 대한 관계의 풍부함, 사상과 감정의 풍부함, 결론적으로
현실의 미적 반영의 다양함이다. 리얼리즘 예술의 진보성은 바로 이러한 풍부함 속에서
인간의 모든 능력, 감성적, 논리적 인식과 실천, 창조적 지식과 상상력, 깊고 풍부하며
섬세한 감정을 발전시키기 위한 무한한 가능성을 개척시켜주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이상은 결코 개인적인 것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모든 미적 이상이란
결국은 사회적인 미적 이상이다. 또한 리얼리즘은 그러한 미적 이상이 단순히 예술가
개인의 독창성에 의해 성취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 바로 역사의 실질적 주체인
민중, 단순한 권력의 대상물이 아니라 자신의 운명의 주인으로서, 객관적 현실의 모든
물질적, 정신적 생산가치의 창조자로서의 민중 속에서만 성취될 수 있음을 알고 있다.
이러한 전망에 입각하여 예술가 역시 역사의 주체로서의 민중의 일원으로서 역사의
진보에 동참하며, 또한 그것을 촉진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