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모더니즘과 리얼리즘 : 형식주의의 인식론적 지평과 올바른 예술방법의 단초.
심광현(서울미술관 기획실장)
Ⅲ. 리얼리즘
물론 데리다의 해체론이나 푸코의 (고고학)과 (계보학)이 아무런 성과도 남기지 않은
것은 결코 아니다. 많은 한계에도 불구하고 데리다는 안정과 정지의 상태를 추구하던
기존의 서구 형이상학의 토대를 끊임없이 뒤흔들고, 열린 다각형외 상태를 지향하는 반
권위주의적이고 반교조주의적인 탐구의 정신과 방법을 모범적으로 보여주었다.
데리다는
스스로 (글 쓰기의 학문)이라고 칭하는 (문자학) (Grammatology)라는 용어를 만들었는데,
이는 새로운 학문이라기보다는 기존의 학문 전체에 의문을 던지고 그것을 심문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의 구체적인 (해체적 책읽기)의 전략은 텍스트의 논리와 저자의 논리가
실은 어떻게 서로 상충되고 있는가를 밝혀내어 텍스트의 가정과 전제 속에 내재해 있는
모순들을 지적해내는 것이며, 텍스트의 조직 속에 쌓여서 가라앉아 있는 의미의, 잊
혀지고 잠들어 있는 침전물을 끄집어 내며, 한 작가가 다른 작가에 대해 오독(誤讀)한
부분과 저자가 빠뜨리고 지나간 부분, 저자 자신이 혼동한 부분, 저자가 말하려다 흐지
부지한 부분들을 끄집어내는 것이다.
푸코 역시 상기한 바의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중요한 제안, 특히 시각예술의
해석에 관해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했다고 생각된다. 푸코의 저작 「말과 사물」 (1966)의
제1장에서 전개된 벨라스케스의 (시녀들) (Las Merninas)에 대한 분석은 고전적인 재현의
논리에 함축된 내용을 새롭게 예시해줌으로써 모더니즘에 의해 오랫동안 왜곡되고 배
척받아온 '재현'개념의 새로운 측면을 부활시키는 데에 크게기여하였다.
이러한 연관관계
속에서 앞 절에서 언급한 바 있는 저항적 포스트모더니즘의 시각예술에 내재한 일정한
의의가 드러나게 된다.
그것이 차용하고 있는 재현의 논리는 무관심적인 정치적 중립행
위로서의 대상의 단순한 모방이라는 자연주의적 재현개념이 아니라, 실제로 그에 내재해
있던 지배와 통제의 사회적 과정과의 긴밀한 연관관계를 되살려냄으로써 특정 시대의
문화권 내에서 작용하고 있는 권력의 관계망을 구체적으로 분석해내고 또한 그에 대해
저항할 수 있는 입지점을 발견하고자 시도했던 것으로 보여진다.
적어도 이 지점에서
후기구조주의, 특히 푸코의 재현의 논리는 리얼리즘 방법과 일정한 측면에서 연관성을
지니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