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두기
소비에트미술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이러한 의문 또는 호기심을 가지고 관심으로 하
는 대상에 접근하려고 한다. 미술에 대한 관심을 우리는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혹은
미술이 우리들의 관심을 유발시켰다고 해도 좋다. 미술은 인간이 창조한다. 미술에 대
한 관심은 따라서 인간에 대한 관심으로 좁혀진다.
기원전 라틴의 시인 테렌티우스의
말처럼 (인간적인 것으로서 나와 무관한 것은 없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작
품을 감상하고 미술관을 방문한다. 그러나 소비에트는 우리들에게 있어서 닫혀진 땅이
었다. 정치사회적인 입장에선 적대국이기도 했다. 그래서 우리는 소비에트의 미술을
서방세계의 미수처럼 자유롭게 접할 수 없었다.
정치사회적인 적대관계가 이것을 금지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적대관계가 해소되면서 많은 관심자들이 북방미술에 대
한 호기심을 나타내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북방미술에 대한 한국인의 관심은 단순
한 조형적 관심 또는 지적 호기심만으로 유발된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한국은, 저
광활무비한 구대륙, 유라시아의 일원이며.
그 지형은 극동의 일부에서 내밀려나온 반
도(半島)이며, 여기서 대대손손 살아온 우리는 그처럼 멀고 아득한 문화적 인과를 북
방으로부터 잠재하기 때문에 그러는지도 모른다.
한국인이 미술의 형식을 근대적감각의 인식유형으로 유발시킨 역사는 대략 일세기남
짓한 형태경험을 내용으로 한다. 이것은 시간(時間)으로서의 경과이지만, 그것이 도입
된 공간(空間)에 대해서 주의해본 한국인은 많은 것같지 않다.
문화비교학자들이 말하
는 (서방의 충격)은 늘 바다를 통해서 접수되었다는게 여기서 말하려는 (감추어진 부
분](hind sight)으로서의 결과론(結果論)이다. 그것은 일본을 중계지로해서 바다를
통해 도입되었다는게 통념으로서의 문화사이다.
바다는 하늘과 땅을 지표로 가르는 추
상적인 호라이존이며, 태고의 침묵을 깨고 어느날 이곳으로 하여 신문화의 문물이 혼
연히 나타났으리라는 환상이 여기서의 통념이다. 그래서 청조문화(淸朝文化)의 동전
(東傳)이 얼만전까지의 문화접촉의 루트였다는데 대해서 망각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한편 이러한 역사지리학적이고 발생학적 인식의 경과는 우리들의 문명조우의 회로가
바다가 아닌 땅이었으며, 이러한 문화감각의 현장성에 대한 경험의 정리가 아직 미해
결의 숙제로 남게 된다.
유라시아는 아시아와 유럽을 일괄해서 호칭하는 구대륙의 이름이다. 우랄산맥, 카스
피, 아조프, 흑해, 타다넬해협을 연결하는 선상에서 자연지리학은 이러한 명칭으로 공
간을 분류하지만, 역사지리의 입장에선 이 지역은 전인미답의 감추어진 인식공간이 상
금에도 상당부분 남아있는 땅이기도 하다.
한낮의 지형처럼 그 명암이 뚜렷해진 유럽
문명을 제외한 유라시아의 상당지역은, 해양이나 높은 산맥등에 의해서 명확한 경계구
분이 어려운 지역이며, (하나의 거대한 대륙)이라고 부르는 수 밖에 없는 미분화의 지
역이라고 하겠다.
태양광선의 각도와 양질의 물이 풍부한 이상적인 벧트존인 북위30
도∼50도의 지역을 제외한 유라시아는, 특히 러시아는, (스라브적인 관념인 영원성
과 신비성 그리고 허무(虛無)가 불러 일으키는 현훈(眩暈))의 의식을 이고장 사람들에
게 잠재케했던 지역이라고 하겠다. 이러한 스라브적 관념으로서의 추상성을 가르켜
J.p.사르트르는 [의식속에 잠재하는 비현실적인 세계에 있어서의 다분히 비교적(秘敎
的)인 허무화(遼無化)라고 말한바 있다.
이러한 지정학적 또는 문화사적인 배경은 앞으로 연구하려는 소비에트미술에 관한
예비지식이 된다고 생각된다. 더욱이 한반도가 이러한 대륙과 연계되는 부분이며, 북
방에 관해서 역사적으로 준비된게 없는 우리의 경험체계로 미루어 이상과 같은 인식의
방향수정은 유효한 것으로 믿어진다.
가령 우리의 근대적인식이 바다를 통하지 않고 땅으로 왔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지
금으로부터 백년전인, 19세기말의 한반도에서 있었던 甲申(1884), 乙未(1895), 馬山
浦(1900=제정러시아가 매수하려던 사건)등이 다른 각도로 진행되었다면, 지금의 한반
도는 어떻게 되었으며, 우리의 세계관은 어떤 인식구조로 구성되었을까‥‥하는 문제들
은 흥미있는 가설이라고 하겠다.
사실존중과 실증으로서의 역사학은 이러한 상상적유
회를 금기로 할테지만 귀납적본질(歸納的本質)로서의 감성체계(感性體系)를 지향하는
예술사의 입장에선 이러한 가설이 오히려 허용되기 때문이다.
바다는 어떤 결과로서의 기성품을 나른다. 땅은 그보다는 원료(原料)나 씨앗을 나른
다. 바다는 인간 그자체가 전달매체로 전달되는 마당이 못되며 자취를 남기지 못한다.
땅은 이것을 남긴다. 실크로드는 이것의 자취이다.
우리들이 사용하는 언어의 맥락을
우랄.알타이의 유형으로 가설하는 연유도, 이러한 지맥(地脈)으로서의 콘텍스트가 발
굴될는지도 모른다는 기대심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그것이 가설로서의 가설에 지
나지 않는다해도 흥미있고 인간적 관심으로서의 가설이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예술의 기원(起源)으로 소급한다는 건 하나의 착각(錯覺)이라고 말한 이는 라이프니
츠였다. [과학이 우리들에게 제출하는 일련의 사실(事霜)은, 그들 사실의 기원을 밝혀
주는게 아니라, 그것을 발견(發見)한 역사를 밝히는데 불과하다]는게 그의 타이름이
다. 그럴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착각은 매우 바람직한 착각인 것이며 필자는
이것을 (즐거운 착각)이라고 부르고 싶다. 현대미술이 지난날의 위계처럼 전단계의 유
파나 양식을 사제계보(師弟系譜)처럼 전숭(傳承)하지 않고, 일거에 원초성(原初性)을
회복하려는 급진적이고 발생학적인 단계로 소급하려는건 왜 그런가.
바다를 통해서 접수된 문물은 결과로서의 기성품이기 때문에, 그것으 조종(操縱)을
익힌 자가 그 가치의 권의를 대리하게 된다. 땅을 통해서 수교된 원료나 씨앗은 결과
이기보다 원인이기 때문에, 참교 견디는 학습과 숙달을 통한 결실(結實)의 도정이 불
가피하다. 마치 한 알의 씨앗을 대지에 심어 가을에 추수하는 농부의 근로과정과 같다
고 하겠다.
기성품은 그것을 창작한 외래(外來)의 상품인 것이며, 중기기관으로 비유할 경우 완
제품으로 조립된 증기기관차라든가 방직기계등이 이것에 해당된다. 이경우 이러한 기
관(機關)을 조종하고 운전하는 자가 마치 그것은 창작한 창조자처럼 비치게 된다. 창
작과 조종은 다르다. 주인(主人)과 노예(姬隸)만큼의 차이가 있다.
그러나 한 방울의
물을 수입했다고 가정하면 어떻게 될까. 그것은 신기(新奇)도 호기(好奇)도 아무것도
아니다. 어디에나 있고 늘 있어왔던 것이어서 그렇다. 하지만 이러한 물을 끓이면 팽
창하는 에너지가 생기고 그것을 이용하면 동력을 얻는 열기관으로 조립할 수 있다는걸
조종자는 모른다.
물은 도처에 있지만 그것을 이용한 증기기관은 지역마다 민족마다
독자적인 스타일(형식 또는 디자인)로 창작된다는게 여기서의 교훈이다. 같은 씨앗이
어도 그것을 배양하는 지열(地熱)과 민족에 따라 다른 결실을 얻게 되는 까닭도 여기
에 있다.
이러한 땅은 오늘의 우리가 한반도라든가 소비에트라고 말하며 손으로 가리키기 훨
신 이전의 유구한 지난날부터 있어왔다. 이 광활한 지역은 유구한 세훨에 걸쳐서 각지
역마다 독자적인 역사적배경으로 생성해왔고 미술도 그처럼 발전해왔다. 이 모두를 우
리는 알 수 없다. 유럽의 미술사처럼 기술(記述)로서의 정리가 엄두도 못낼만큼 광활
한 땅이라는게 그 이유이다.
[소비에트1는 에코로지로서의 명칭이며 지난 70년동안만 살아있던 이름이다. 이 이
름을 가지고 부르거나 가리킬 수 있는 북방의 땅은 현재는 없다. 이름이 죽어버렸기
때문이다. 죽은자의 이름은 없어졌어도 땅은 그대로 있다.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
다지만 땅은 그렇지 않다. 어느 언어학자의 말처럼 [지도(地圖)는 바로 땅이 아니다]
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도의 도움없이 땅은 여행할 수 없는 경우처럼, 헌재는 쓸모
없어진 지도를 근거로해서 북방미술의 여행으로 떠나야만 되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