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소비에트)미술의 변천

유준상(전 학예연구실장)


I)서론 Ⅱ)혁면전의 러시아미술 Ⅲ)러시아 · 아방가르드 Ⅳ)사회주의 리얼리즘 V) (페레스트로이카)이후 Vl)결론

러시아의 근대미술

19세기로부터 20세기초두에 걸쳐 러시아미술은 일대전환기를 맞이하게 된다. 관제 의 아카데미즘에 반대하는 이른바 [이동파] (The wanderers)의 화가들이 이러한 변 환기의 주역들이다.

아렉산더2세(1851-81)당시 관제의 아카데미즘에 불만을 품은 [자 아의식의 민족파)화가들이 있었다. 이들은 타율로서의 민족형식이 아닌 자율적인 민족 주의를 표방했으며, 1861년의 (투르게네브)의 대표작 (아버지와 아들)에서 영향을 받 은 화가들이었다.

스라브의 언어충동(言語衝動)은 전통적으로 문학충동(文學衛動)의 민족이며, 문학적발상과 조형적발상이 하나의 의식속에 공존하는게 이들의 특성이라 고 하겠다. 19세기의 러시아문학에서도 알 수 있듯이 스라브의 예술혼은 광대한 원급 법을 구사하는 문학적서술성에 있다고 해서 과언은아니다.

그리고 이러한 시각에선 러 시아미술은 그림으로 표현한 문학이라고까지 말할수 있으며, 순수하게 조형적인 형태 경헙만으로 미술의 근대성을 구축했던 서방세계작가와 다른 점이다.

한편 전기한 (아버지와 아들)의 주인공인 (바자로브)는 혁명적민주주의자였으나 예 술의 참뜻을 모르는 속류의 유물론자로 묘사되고 있으며, 작가자신 이러한 성격을 (허 무주의)의 스라브적인 유형으로 부각시킨다.

이후 서방의 의식인들에게까지 이 허무주 의자(니힐리트)라는 말이 유행하게되며, [세기말]적인 예술가의 선행표본으로 받아드 리게 된다. 이것은 당시의 시대사조와 인테리겐치아의 나약성을고발한 문학이었고, 보 수와 혁신의 양화에 의해 공격당하지만, 진보적 지식인들이 공명하는 지원으로 부각된 다.

(이동파)의 미술가들은 이러한 사상적격변기가 배출한 작가들로서, 오늘날 러시아 미술 19세기의 거장들로 알려지게 된다. 참고로 이들의 이름을 열거하면, 크람스코이 (Ivan N. Kramskoy), 니코라이.게(Nikolai N. Ge), 페로브(Vasily G. Perov), 사브라소브(Aleksei K.Savrasov), 시스킨(Ivan Ⅰ. Shishkin), 레핀(llya E. Repin) 레비탄(Isaak Ⅰ. Levitan), 슈리코브(Vasily Ⅰ. Surikov), 바스네소브 (Viktor Vasnetsov)등 그야말로 기라성같은 거장들이다.

사브라소브, 시스킨, 페로 브, 레비탄등은 풍경화가이며, 다른 작가들은 사회현실을 비판적인 시각에서 회화형식 으로 구성한 대가들이다. 특히 레핀은 거장이며 수리코브는 이에 준한다.

여기서 우리들 한국인의 입장에서 고려할것은, 러시아문학에 관한 관례적인식에 비 해 이들의 미술작품에 관해선 놀라울정도로 무지하다는 사실에 대해서이다.

이러한 편 향된 미술지식은 (서양미술사)라는게 파리를 중심으로하는 미술평가로 구성되었다는 데서도 찾아볼 수 있겠으나, 그보다 먼저 그러한 지식을 무조건 수용하려는 우리들의 태세(態勢)에도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다. 통념(通念)은 선입견(先入見)과 구별되지만, 그러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데서 자부심의 근거가 된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

전기한 거장들이 러시아미술의 압권으로 등장하는 계기는 17세기말부터 18세기초두 에 걸친 러시아사회 그 자체의 일대변혁으로부터 비롯된다. 그것은 인습적이고 미개했 던 러시아제국을 혁신적으로 변혁시킨 피오톨대제의 새로운 사회정책과 역설적으로는 나폴레옹의 러시아침공이 계기가 된다.

피오톨대제는 신국가건설을 위한 근대화의 촉 진을 근대도시의 건설로부터 착수하며, 종래의 이콘인 종교화보다 현세적인 초상화, 장식화같은 회화 또는 조각을 민족적인 차원에서 장려한 바 있다.

대제는 젊은 미술학 도들을 서방으로 관비유학시키며 1757년 피터스버그(얼마전의 레닌그라드)에 미술학 교를 창설한다. 이로부터 당시의 서구미술의 위계였던 인물화(초상화), 전쟁화(역사 화), 정물화, 풍경화, 풍속화의 계보적양식의 토대가 마련되기 시작하며, 전기한 거장 들이 미술학교에서 아카데미의 정규과정을 밟게 된다.

이로부터 러시아미술은 그나름 의 바로크, 로코코, 신고전주의의 유형을 답습하고 미술사를 양식의 변천사로 이해하 게 된다. 한편 나폴레옹의 침공은 애국사상을 고취하는 계기가 되며, 독자적인 역사화 또는 기록화의 쟝르가 수립되며, 아카데믹한 고전주의를 뛰어넘어 스라브의 서정이 농 축되는 낭만주의화풍이 시도된다.

이 무렵의 대가들은 니키진, 마도베에브, 트로피닌, 키프렌스키, 베네치아노브, 부 류로브, 이바노브, 페도도브등이다.

또다른 한편으론 아카데미술관의 건립을 위한 집권당국의 문화정책을 들 수 있다. 에르미타즈미술관이 그것이며, 트리티아고브(P.M. Tretyakov)는 탁견의 미술작품 수집가로서 나중에 모스코에 미술관을 세운다(러시아미술의 걸작들은 대부분 여기에 있다).

그후 인상주의와 상징주의의 영향을 받으며, (세계의 미술)구룹("World of Art") 그리고 (푸른 장미)구룹("Blue Rose")등의 실험적경향이 줄이어 나타나며 예술지상 주의의 양상을 한때 띄우기도 하지만 러시아사회 그자체가 혁명의 빌미를 나타내기 시작한다.

◀ 바스레쵸브 "교차로의 기사", 1882, 167*299cm

◀ 크람스코이, "광야의 예수", 1872, 캔버스에 유채, 180*210cm






◀ 레핀 "볼가의 배끌이", 1870-3,
캔버스에 유채, 131*281cm


◀ 레비탄, "평화", 캔버스에 유채, 150*206cm






◀ 수리코브, "아침의 처형", 1881, 캔버스에 유채, 218*378cm



◀ 쉬스킨, "모스크바 근교" 1869c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