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러스트로이카)
1987년 11월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은 두가지 의미에서 세계석론을 응집시
킨바 있다. 하나는 1917년 10월(러시아구력의 11월)의 볼쉐비키와 에스엘좌파에 의
한 혁명정부수립 70주년이 되는 해였고, 다른 하나는 이 70주년기념연설에서 고르바
쵸브서기장이 제시한 (근본적개혁)에 관한 발언이었다.
나중에 (페레스토로이카)로 알
려지게 되는 이 개혁안은 소비에트자신은 물론이려니와 서방세계의 관측들이 경악을
표시할만큼 대담무쌍한 발언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부분적인 궤도수정이라던가 행
정력의 가속화같은 전략의 차원에서 고려되는 시정책은 아니었다.
(소비에트)인 내부
구조의 메카니즘을 뿌리로부터 근본적으로 개혁해야만 한다는 중대발언이었고, 그 발
언의 당사자가 누구도 아닌 (소비에트)의 서기장이라는데 있었다.
기실 86년의 제27
차당대회에서 고르바초브는 서기장취임의 기조연설에도 같은 맥락의 개혁안을 발표한
바 있었다. 그러나 이때의 (최고소비에트)는 30년전인 56년의 제20차당대회에서 후르
시초브가 행한 스탈린비판의 재판정도로 받아들였턴 것이었다.
주지하는대로 후르시
초브의 스탈린비판은 당시의 소비에트에 이른바 [해빙기(the thaw)]의 무드를 조성
했으며, 미술분야에서도 추상표현의 서구양식이 공개적으로 시도되기도 했었다. 그러
나 후르시초브의 해빙(解氷)은 곧 부레즈네브에 의해서 다시 결빙(結氷)되며, 서구양
식의 표현도 통제된다.
그러나 혁명 70주년기념연설에서의 고르바초브의 (페레스토로이카)는 후르시초브의
스탈린비판같은 감정적인 우상파괴는 아니었다. (제2의 혁명)이라고 불리울만큼 투철
하고 명석한 역시의식과 사회인식으로 구상된 개혁안인 것이었다. 그것은 앞에서 말한
부분적인 수정이나 점진적인 변화가 아니라, 모든 분야애 걸쳐 예외없는 근본개혁을
골자로 하는 것이었다.
당시까지의 소련에는 반대당이 없었기때문에 자아비판의 공개
성 (나중에 그라스노스트로 알려지게 된다)을 전제로 하는 대담하고 용기있는 개혁안이
었던 거며 이것이 세인을 놀라게 했던 것이었다. 관료제도를 비판하고 당의 지도적지
위여하를 불문하는 특권(特權)의 배제가 여기서의 공개성이다. 그리고 이러한 공개성
으로서의 지난 70년간의 소비에트의 성과와 과오를 반성한 다음 고르바초브는 이제
까지의 (위로부터의 혁명)을 종식시키고 (밑으로부터의 혁명)을 제창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다시 이것을 에코로지의 유형으로 분류늘게 다음의 (소비에트혁명 70주년)이
다.
1) 혁명후의 전시공산주의시기(1918-21)
2) 신경제정책(네프) (1921-28)
3) (관료주의적행정적관리)의 스탈린시대인 집단화와 산업화(1929-53)
4) 후르시초브의 스탈린비판과 브레즈네프의 정체기(1953∼82)
이상이 고르바초프에 의해서 분류된 에코로지(사회생태)의 유형이며, 지난 70년간
의 소비에트의 변천과정에 관한 정치사회적인 관점으로서의 경과이다. 우리는 여기서
이러한 에코로지의 유형을 미술문화사적인 변이의 경과로서로 유추해볼 수 있을 것이
다.
1) 혁명전의 러시아미술
2) (러시아 아방가르드) (1910-30)
3) (사회주의 리얼리즘)(1930∼1980)
4) (페레스토로이카)이후(1989∼ )
이상은 필자가 임의로 분류한 지난 70년간의 러시아(소비에트)미술의 변천사이며,
서술상의 방법으로 분류해본 계보적유형으로서의 (러시아미술70년사)인 셈이다. 그러
나 미리 밝혀둘건 지난 70년간의 소비에트미술을 하나의 구심적인 전체상으로 제시되
는건 아니라는 점이다.
(러시아 아방가르드)의 기수였던 칸딘스키는 미술의 세계주의를 열망했던 추상화가
였다. 그는 음악의 초지역성을 부러워했으며, 미술표현도 이처럼 국경과 민족언어로서
의 이디엄을 초월하여 만인이 공감할 수 있는 보편형식으로 구성해보려 했었다.
그러
나 만년의 그는 자신의 예술발상의 근원은 (이콘)에 있었다고 토로한바 있다. 러시아
의 (이콘)인 그 성상화의 형상과 색채가, 어린 시절의 칸딘스키의 잠재의식속에 침전
되었다는 것이며 성년기의 그의 추상형식속에 이것이 자연스럽게 스미어 젖듯이 배어
나왔다는 뜻이다.
에렌부르크의 말처럼 (가장 민족적인 것이 오히려 국경을 초월
한다) 는 말처럼 칸딘스키의 세계주의는 러시아(스라브민족)의 뿌리로부터 싹텄다는
게 된다. 이러한 미술의 독자성(아이텐디티)의 입장에선 (소비에트)미술을 한마디로
요약하는건 무모하고 불가능하다고 하겠다.
스탈린은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교시하면
서 (형식 (形端))은 민족적이고 내용(內容)은 사회주의라는 말을 했다는 것인데, 터키
와 인접한 구르지아공화국의 미술가와 발트해협의 에스토니아, 라트비아공화국의 미
술가의 작품을 하나의 유형으로 말한다는건 그 자체가 추상적이라고 하겠다.
이러한 까닭으로 (소비에트)의 미술을 하나의 전체상으로 말한다는건 그 자체사 어
불성이라고 하겠다. (소비에트)를 미술표현의 입장에서 연구하는건 결국 그것을 구성
하는 민족과 언어의 고유(圖有)의 원리 (原理))에 의해서 설명할때만 실체적인 접근이
가능하다고 하겠다. 어프리오리한 관념이나 가치론단은 여기서는 무용하며, 하나 하나
의 작품(作品)을 놓고 현장성있는 실중적검토가 바람직한 연구태도임은 재언할게 없
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