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Ⅵ) 결 론
서두에서도 지적한데로 현재의 러시아(소비에트)미술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는건 무모
하고 불가능하다고 하겠다. 스탈린체제가 해빙되면서 지난 삼십년간 「비공인」들에 의
해 여러가지 양상의 실험이 전개되었으나, 이것을 하나의 페턴으로 인식하는게 어렵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정을 앞에서 소개한(에로페브)는 다음처럼 말하고 있는데 참고로
옮겨보기로 한다.
[전후 소비에트연방은 점차로 스스로가 유토피아사회라는 자신을 잃
어가고, 또한 러시아제국과의 전반적인 관계를 강조하는데 적극성과 솔직성을 띠우게
되면서 사람들은 자기 집에서 사적(私的)으로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작곡하고 시와 소
설을 쓰기 시작했다. 그것은 국가에 대한 봉사라기보다, 그처럼 과열했던 사회주의리
얼리즘의 실천으로부터 벗어나 한숨 돌린다는 일종의 지층(地層)으로서 존재했던 것이
었다.
서사시적인 언어회로(言語回路)속에서 실체(實體)가 없는 "이념적(理念的)"인
나날을 보내고 있었던게 사회주의리얼리즘이었기 때문이다.
「비공인」예술가란 자유세계의 재야세력처럼 「비공인」 그자체가 사회여론 또는 미술
여론의 입장에서 공개적으로 공인된 예술적미시사회를 가리키는게 아니었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이들은 오랜 세월에 걸쳐 삼삼오오로 아파트나 사설아트리에에서
사적(私的)으로 은밀하게 활동하던 예술가를 뜻하며, 따라서 이들의 작품을 계보적으
로 혹은 유형적으로 분류종합한다는건, 현재의 러시아에서도 어려운 실정이라고 한다.
정치사회적인 현실하고는 무관하게 수도원의 밀실에서 은밀하게 제작된 미니어츄어가
미술사의 맥락으로 정리되는데에는 상당한 시일이 필요했던 것처럼, 페레스트로이카
이후의 러시아미술을 공인된 미술사적맥락으로 정리한다는건 앞으로의 숙제로 남아있
다. 따라서 미분화된 인식으로서의 이국취미만으로 러시아현대미술을 말한다는건 현
재로선 금기조항이라고 해야겠다.
미술은 어디까지나 작품(作品)을 앞에 놓고 말하는게 정도이기 때문이다.
(카바코브), (모나스틸스키)등 삼십명가량의 작가들은 이러한 러시아의 실정을 우려
해서 그들로 조직된 (마나) (MANA=Moscow Archives of New Art)라는 미술관건
설계획을 1988년 발족했다고 한다. 뜻있는 작가들의 기증품을 모아서 모스코교외에
있는 한 별장에 미술관을 건립한다는게 이들이 목표로하는 현실과제라는 것이다.
러시
아에는 트리치아코브, 푸쉬킨, 러시아국립, 에르미타즈등 명성있는 미술관이 있으나,
현대미술을 전문적으로 관장하는 기구는 없었다.
그러나 현재 진행중인 이 계획은 기
대한만큼의 성과를 못올리고 있으며, 미술관으로서의 품격을 갖추기에는 요원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대적요청에서 발족된게 앞에서 소개한 (즈아리치노)국립현대미술관
의 존재이다. 이것은 (소비에트)가 상존했을 당시에 시도된 것이며, 「비공인」을 적대
시했던 소비에트당국의 푸로젝트였다는걸 감안할때, 페레스트로이카의 위업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증명해주는 하나의 실예라고 하겠다.
이 미술관은 크레무린궁전에서 25
키로 떨어진 곳에 위치한 러시아황제가 만년에 사용했던 저택을 미술관으로 개량했다
고 한다. 건물은 18세기말 에카테리나2세의 명으로 건립되었다고하며 마트리오슈카
형식의 우아한 건축이라고 한다. 이것은 부레즈네브당시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
정부 문화성의 후원으로 추진되었으며, 사회주의리얼리즘과 동등한 가치로 인정되는
(장식적인 응용미술)을 소장하는 목적에서 제안되었다고 한다.
나중에 소장품의 내용
이 전통적인 또는 민예적인 공예작품으로 수집경향이 바뀌게 되며 1989년 6월 현대의
아방가르드가 컬렉션의 주요부분으로 등장하게 된다.
이러한 과감한 변모는 앞에서도 인용했던 여기의 학예부장 (에로페브)의 탁월한 공
로로 알려져있다. 그는 이미 「비공인」의 진가를 확신한바 있었다고하며, 이년간의 노
력으로 현재 미술관이 보유하게 된 현대미술품은 260여점(1990년말현재)인데 그중
30여점은 국외의 아방가르드작품이라고 전한다.
수집품목의 내역은 기성장르인 회화,
조각을 위시해서 오브제와 인스털레이견 그리고 총합적인 작품까지를 망라한다고 전
한다. 그러나 러시아의 상부구조는 아직도 보수적이며 평향적이라는 점과, 사회주의리
얼리즘에 감염된 일반관중은 「비공인」에 대해 거부적이라고 한다.
이러한 현상은 러시
아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같다고 하겠으나. 페레스트로이카이후 러시아가 급변
적인 문화표지로 돌변한 것처럼 통념하는건 어떠튼 금물이라고 하겠다. 실제에 있어서
(즈아리치노)의 현대미술부문스텝들이 현념하는건 1920년대의 재판(再版)에 대한 기
우라고 한다.
탁월한 개별들에 의해 생동적으로 부상했던 러시아아방가르드가 보수적
이고 몰이해했던 1930년대의 관리들에 의해 말살되었던게 이들에겐 쓰라린 교훈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다시 페레스트로이카는, 첫째 소비에트(당시의 현재)의 현재적상황을 있는
그대로의 현실로 인정했다는 것과 이러한 평가적인식을 근거로해서 개혁의 펼요를 실
천적인 푸로세스로 추진했다는점, 그리고 이러한 이행 또는 변신으로 소비에트체제를
근본적으로 개혁한다는 것이었음을 재삼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사회주의체제의
나약성이 아니라 그 가능성의 불완전한 이용)에 대한 개혁안인 것이었다. 다만 이념
(理念)으로서의 세계주의라는 이데오로기의 허구(虛構)가 눈 녹듯이 허물어진 자리에
포스트내서널리즘이 다원적으로 싹트기 시작했다는 점을 주의해야겠다.
그라스노스트
는 현대러시아사회의 표준이자 권리이며 또한 요청이다. 토론, 논쟁, 의견의 충돌이
현재의 일상적 특징이며, 이러한 푸로세스를 거쳐 사상(思想)의 다원화(多元化)를 통
한 (밑으로부터의 개혁)이 바로 페레스트로이카의 본체이며 귀납적유발로서의 발원지
이기도 하다.
러시아의 현대미술도 이러한 다원화의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서방세계의 미술사
조가 러시아의 원료에 조미료처럼 혼합된게 현재의 작품현황이라고 말 할 수 있겠다.
일전에 모스코의 [미술동맹]으로부터 전시교류의 제의가 있었고 관계자를 초청하겠다
고 통보해왔다.
그러나 [미술동맹]은 현재로선 지난날의 명의(名義)에 불과한 이름뿐
임을 알고있는 필자는 다른 회로를 통해 이것의 실체를 조사해본 결과 한탕주의의 미
술부러커들의 조작극이였다는걸 알게 되었다.
이들은 한국인이 실리보다도 명분에 약
하다는 점과 성급하게 주정적으로 사리를 판단한다는 취약점을 알고 있었다. 이처럼
러시아관계 미술교휴는 현재로선 효율적인게 못되며, 통일된 전시유형으로 구성하는
게 지극히 어려운 실정에 있다. 전시는 대량의 무질서를 나열하는게 아니기 때문이다.
이점 미술행정관계자는 명심해야 할것이다.
러시아현대미술은 현재 진통중에 있으며
앞으로 어떤 작품이 분만될지는 오직 시간만이 해결한다고 하겠다.
이상 미비한데로 러시아를 소비에트와 관련시켜 미술의 변천사로 살펴보았다.앞으
로 보다 더 농밀도있는 연구보고를 할 예정으로 있다. 그리고 끝으로 말해둘 것은 이
번 주마강산격인 조사과정에서 겪어야 했던 어려움은 러시아어에 대한 무학무지가 지
대한 걸림돌이었다는걸 고백해야만 되겠다. 러시아어로 된 몇권의 미술서적을 가지고
있지만, 눈으로 보고 글로 읽지못하는 눈뜬 장님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셀리릭알파
뱉의 자모를 로마문자의 자모와 하나 하나 비교하면서 우선 러시아작가의 이름이나마
판독해 나간다는게 일의 순서였다. 이집트의 회화문자를 그리스의 언문이었던 고대의
데모틱문자와 비교해서 해독했던 샹포리옹의 지적희열은 그러나 필자에겐 없었다.
스
라브의 셀리릭은 살아있는 문자이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의 말처럼 [사상의 본체는 언
어이다] 이듯이, 소비에트의 이데오로기는 러시아어로 전달되었고 인식되었던 것이었
음을 재삼 명기해야 되겠다. 문맹(文盲)은 이데오로기를 구성하지 못한다.
언어(言語)
의 숙명(宿命)인 추상적일반화의 제약성이, 미분화된 민중의 감정을 본능적인 적계심
으로 분출케 한, 기폭제였다는게 의미론자들의 주장이기도 하다. 장님은 시각예술을
창조하지도 감상하지도 못한다는 지적이다.
끝으로 스탈린에 의해서 추방당했고, 끝내는 그가 보낸 자객에 의해서 등산용피켈로
무참하게 망명지 멕시코에서 살해당한 (트록키) (L. Trotsky 1879-1940)의 말을인용
한다. 『부르조아지는 권력을 장악했으며 고유의 문화를 창조해왔다. 같은 논법으로 푸로레
타리아드도 권력을 쥐면 푸로레타리아문화를 건설할 수 있다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부르
조아지는 부유한 계급이었으며, 교육수준도 높았다. 또 부르조아문화는 부르조아지가 권
력을 쥐기 전부터 이미 존재했다. 그러니까 부르조아지는 그 지배을 영속시키기 위해서 권
좌에 오른 것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부르조아사회에 있어서의 푸로레타리아는 재산이 없는
착취계급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고유한 문화를 형성하는게 불가능하다고 말 할 수 있다』.
즉 푸로레타리아예술 또는 푸로레타리아문화는 허구(處構)라는거며, 푸로레타리아독재의
일과성 (-過性)때문에 결코 영속(永續)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사회주의리얼리즘)에서 살펴본 대로이다. 그령다면 페레스트로이카이후의 러
시아미술의 앞날은 어떻게 변모한다는걸까‥‥‥? 매우 흥미있는 일이 아닐수 없M며,
우리들의 관심을 귀납적으로 유발시키는 기본주제라고 하겠다.
(참고문헌)
- 'Soviet Art 1920s∼ 1930s" Russijan Museum, Leningrad
- "Artist of the 1980s : New Names"
Alexander Yakimovich , Moscow
- "Masters of World painting in Soviet Meuseums"
Aurora Art publishers, Leningrad
- "Russian and Soviet Theater 1905∼ 1932"
Harry N. Abrams, New Yark
- AICARC "New Realities in Soviet Art Research" 1989 (bulletin)
- The Myth of Mass Culture"
Alan Swingewood, Macmillan press
- 'The Avant-Garde in Russia, 1910∼30: New perspectives"
5. Barrow & M. Tuchman The MIT press Cambridge, mass.
- "Soviet Contemporary Art"
-From Thaw to Perestroika-'Setagaya Art Museum, Tokyo.
- "A History of Russian Painting"
Alan Bird, Phaidon, Oxford 1987
- "Russian Art;from Neoclassicism to the Avant-Garde 1800-1917
Dmitri V. Sarabianov, Harry N. Abrams, INC. , PUBLISHERS
New Y3rk. 1990
- "Unofficial Art in the Soviet Union"
Paul Sjklocha and Igor Mead,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Berkeley and Los Angeles, 1967
- "Cinquantemaire
; De L'exposition Internationale des Arts et des Techniques dart
La Vie Moderns"
Institut Francais d'Architec-ture/paris-Musees. 1987
- "Moseo D'arse Contemporanea Prat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