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스코의 파닉
서두에서 이미 밝힌바데로 코르바초브의 페레스트로이카이후 그라스노스트의 전개
는 소비에트사회에 일대 변혁을 가져은다. 전체주의의 무거웠던 사슬이 눈녹듯이 풀리
고 집권적관리체제가 허물어지면서 「공인」과「비공인」의 차별이 무의미하게 된다.
이
제까지 지하에서 첩거했던 「비공인」들은 아무 거리낌없이 공공전시관에서 전시하게 되
었으며, 이제까지 감시와 탄압의 장본인이었던 소비에트당국은, 태도를 바꾸어 서방세
계미술을 국내로 영입하는 한편 지난날의 「비공인」을 상대편으로 진출시키는 문화정책
을 추진하기 시작한다.
1988년 소련방 문화성의 전면적인 협조로 모스코에서 서드비경매가 실시되며, 많은
「비공인」들이 서방의 컬렉터의 새로운 수집목록에 오르게 된다. 모스코와 레닌그라드
(이제는 피터스브로크)의 「비공인」들은 세계미술시장의 감미롭고 엑조틱한 새로운 품
목으로 부상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로부터 러시아는 서방세계에 있어서, 지난 반세기
동안의 봇물이 터지듯이 열려진 새로운 개척공간으로 개방되기 시작한다. 독일의 베
른과 퀘른은 88년 러시아현대 미술전을 개최하며, 파리의 퐁피두는 (소츠)의 핵심멤
버인 뷰라토브의 대대적인 개인전을 개최한다.
미술행정과 해석의 일인자임을 자부하
는 영극은 [러시아미술 100년(1889∼1989)전] 을 주로 개인소장의 작품들로 구성하여
여 런던의 바비칸과 옥스포드의 근대미술관에서 89년에 개최한다. 러시아에 산재하는
실험적경향의 현대작품을 한자리에 모으는게 현재로선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서로 열명으로 구성되는 (10+10) 전을 조직하여 네개 도시를 순방한바 있다. 트렌
스아방가르드의 이태리는 자신들이야말로 「비공인」과 심정적으로 연계되는 실험집단
임을 자부하며 「아르티스티·룻시·콘텐포라네아」로 칭하는 12인의 작가전을 푸라도(피
렌체북방)의 루이지·벳치미술관에서 개최한다.
이처럼 90년대를 전후한 근자의 세계
미술계는 개방된 러시아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 한편 이상에서 예시한 전시회에는 이
른바 [솟츠(Sote)] 의 주류인 뷰라트브, 카바코브, 고호흐브스키, 츄이코브를 위시
해서 이들을 추종하는 젊은 작가들로 구성되는게 특징이었다.
한편 이러한 개방무드를 타고 일확천금을 노리는 서방의 상업주의가 모스코와 레닌
그라드로 80년대말부터 쇄도하고 있는것도 사실이다. 페레스트로이카의 원인은 경재
정책의 실패였으며, 근자의 소비에트사회의 물직적결핍은 상상을 초월하는 실정에 있
다. 공정환율과 암시장의 비율이 한때 이십배가까운 폭등세를 보였다고 전하며, 이러
한 외하를 획득하는데 미술품의 존재는 귀금속과 다를바 없다는 것이다.
90년초 푸쉬
킨미술관장은 모스코의 저명한 수집가 V, 마기로부터 그의 개인수집품의 전시를 허락
받고 전시준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그러나 이 전시는 예기찮던 돌발사고로 불가능하게
된다. 삼십점의 유화와 상당량의 16∼17세기의 이콘 그리고 미니어츄어초상화들이 모
두 도둑맞았기 때문이다.
공정시가로 삼백만불을 호가했던 이 미술품가운데는 칸딘스
키도 포함되어 있었다. 소비에트문화기금(The Soviet Culture Fund=문화사업을
하는 사설단체)은 5만루불(약8만달러)의 현상금으로 정보제공자를 구했으나, 도난품
은 이미 해외로 반출되어 보다 고액의 수집가들 창고속에 사라져버린 뒤였다. 이러한
도난사건을 모스코에서만 네차례 발생했다고하며, 이러한 예술범죄를 [모스코마피
아] 라고 부른다.
90년대를 전후한 소비에트의 미술시장은 이처럼 복잡괴기로 얽혀있는 상태라고하
며, 모스코의 저명한 평론가이자 즈아리치노(Tsaritsyno)현대미술관의 학예부장A.
에로페브(Andrei Erofeev)는 「절망적인 상황」이라고 단언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현
상은 중앙집약적이던 강력한 행정적통제력이 와해된 사회변동의 와중에서 저기러지는
현상이지만, 더욱 나쁜것은, 모든 도난품이 해외로 반출되는데 있어서 세관들이 오직
의 한몫을 톡톡히 한다는데서도 찾아볼 수 있다. 90년 8월 헝가리국경선으로 월경하
려는 한대의 트럭에서 무려 234점의 이콘(성상화)이 적발되었다는등이 이러한 사건의
실예이다.
그리고 이러한 현황이 우리들에게 주는 교훈은, 러시아 또는 소비에트를 상대로 하
는 미술교류에 있어서의 신중하고 효율적인 인식배려라고 하겠다. 러시아미술에 관해
우리는 모르는게 많으며, 환상의 상태는 어떻는 금물이다. 근자 서울에서도 몇차례 소
비에트관계 미술전이 있었다.
그것은 소비에트에서 온 미술임에는 틀림없었으나, 미학
미술사적으로 또는 외교적문화정책의 입장에서도 무의미한 것이었음을 차제에 자성해
야 할줄로 생각된다. 레닌그라드의 네프스키대로의 가잔사원근방에는 수천수백을 헤
아리는 거리화가들이 운집해있으며, 초심자의 눈을 끄는 이국취미의 정경들을 묘사한
작품들이 끝없이 널려있느게 현재의 러시아미술계의 단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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