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소비에트)미술의 변천

유준상(전 학예연구실장)


I)서론 Ⅱ)혁면전의 러시아미술 Ⅲ)러시아 · 아방가르드 Ⅳ)사회주의 리얼리즘 V) (페레스트로이카)이후 Vl)결론

당나귀 꼬리 논쟁

1953년 스탈린의 사망은 사반세기에 걸친 독제체제의 종말을 의미하는 죽음이었고, 후르시초브의 스탈린비판은 전기했듯이 (해빙기)를 소비에트사회에 가져오게 된다.

이것의 징후는 미술계보다도 전통적으로 강한 문학계에서 해빙되기 시작하며 Ⅰ. 엘렌부 르그는 54년 (해빙)이라는 문학작품을 이미 발표한바 있었다. 솔제니친의 [테니소비 치의 하루]는 (인간존엄)을 다룬 작품이며, V.포메란트세브라는 작가는 문학과 희곡 작품에서 결여되어있는 성실성은 (인간)에 대한 주제가 전혀 없다는데 있다고 개탄했 다.

어떻든 해빙의 무드는 문화전반에 걸쳐 점차척으로 녹기 시작했던건 사실이며, 자 물쇠로 굳게 잠겨진 그늘속에 있턴 칸딘스키, 말레비치, 가보등의 작품이 햇빛을 보게 되는것도 이무렵이다.

모든 아트리에의 문앞에 붙어있던 [사회주의리얼리즘·무용자출 입엄금)이라는 표말이 때어지고, 일반공개가 금지되었던 에르미타즈와 푸쉬킨미술관 의 르느왈, 모네, 드가, 고갱, 세잔, 마티스, 피카소등이 실로 오래간만에 조명을 받 게 된다. 이러한 (해빙)은 예술가의 시각에서 본(해빙)이었으나 정권당사자의 시각은, 그러나 아니었다.

스탈린의 죽음은 짓눌리듯이 무거웠던 짐을 당장 벗어버린다는 걸 뜻했으며, 상대적 으론 (창조적인 유토피아) (creative realm)가 전개되리라는 환상이었지만. 이러한 자 유화(自由化)의 정책적인 집행과정에서 봉착하게 된 어려움은 새로운 문화정책에 관한 기본안이 집권당국에 준비되지 않았다는데 있었다.

따라서 (자유화)의 개념은 양의적 兩義的)으로 해석되는 애매모호한 뜻이었고, 이러한 현상은 관료들의 문화감각이 무 정견(無定見)했다는데 있었다. 그러니까 스탈린비판은 반대를 위한 반대일뿐,그 대안 (代案)이 비판자들에게 없었다는게 된다.

따라서 후르시초브의 (해빙)은 빙산의 일각 이 녹는듯싶다가 부레즈네브의 강풍에 의해 도루 얼어붙는 꼴이 되고만다. 이것이 고 르바초브의 (근본적인 개혁안)(패레스트로이카)과 다른 점이며, 그 원인(遠因)으로는 앞에서 애시한바처럼, 러시아사회 그자체가 내용적가치(內容的價値)와 형식적기능(形 式的機能)으로 분회되는 중성적(中性的)인 성격으로서의 근대화과정 (近代化過程)을 경 험하지 않았다는데 있었다.

비유적으로 말하면 정신(精神)의 개혁을 물리(物理)의 힘 으로 강행하려는데 있었다는게 된다. 따라서 말로서의 (해빙)은 떠둘고 있었으나 후르 시초브시대의 러시아는 상금에도 완강한 (소비에트)였고 [스탈린주의의 관료제도 (pejorative term)]가 그대로 실세였다는걸 알게된다. [당나귀꼬리논쟁]은 이러한 관 료제도가 예술창작의 자율성에 가해진 타율적이고 부모한 간섭의 사례(事例)를 또하나 기록하게 된다.

닫혀진 공간인 소비에트가 서방세계를 향한 문화교류의 문호를 비스듬이 열기 시작 하는건 1959년이었다. 이 비좁은 문화회로로 서방의 미술정보가 빛어들기 시작한다. 후기추상표현과 팝아트 그리고 오프아트가 암시장에서 음성적으로 거래되는 그림엽 서, 미술잡기, 복제품등의 간접매체를 통해 알려지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경향을 1954년무렵부터 실험하고 있던 일군의 (비공인)미술가가 있었다. 모스코의 아르바트 (Arbat)거리에 아트리에가 있는 Ⅰ. 베류틴(Ilya belyutin)이 그였고 그를 추종하는 젊은 작가들이었다. 소비에트체제의 비평가들은 이들을 서구 부르조아미술을 모방하는 는 (바바리즘) (vavarisms-barbarisms=야만스럽다는 뜻)이라고 불렀다.

또다른 경향 으로서는 초현실주의와 그러한 유사성을 들 수 있다. 이상의 두 유형은 [후르시초브시 대)인 (해빙기)에 해당하는 오년간(158-63) 그나름의 활동을 보인다. 후자의 경우는 다리, 베르만, 기리코, 마타, 당기 그리고 후기경향으로서의 마그리트, 델보등의 영향 을 입은 초현실주의화풍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리얼리티]에 대한 소비에트의 개념(槪念)은 이상의 두 유형을 당연히 반대 하는 입장이었다. 왜냐하면 이러한 유형은 잠재의식, 영혼, 내세(來世)등의 관념이 전 제되는 것이었고 따라서 현실상황을 리얼리티로 보는 소비에트개념하고는 상반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바꿔말해서 주관적이고 잠재적이며 요구불만의 표시가 예술이 라고 한다면, 이러한 리얼리티와 재창조(re-create)는 바로 왜곡이라는 것이다.그리 고 이러한 유형이 부르조와사회에서 유행하는건 다름아닌 서구예술의 쇠퇘를 증명하 는게 아니냐는 것이다.

따라서 이처럼 왜곡된 리얼리티는 사회주의리얼리즘의 균형을 파괴하는 거며, 민주주의와 인민의 예술 그리고 위대한 전통예술의 적이라는 것이었 다. 예술은 이데오로기의 응용인거며 소비에트사회의 모든 제어단위가 그러한 것처럼 (조직된 기능)(controlling function) 으로서의 이데오로기의 형상화(形象化)야 말로 참된 미술형식이라는 것이었다.

이러한 소비에트미학하고는 달리 서방세계, 특히 라틴의 시각은 흥미로운 대조를 보 인다. 앞에서 인용한 J.P.사르트드의 말처럼 [의식의 하부구조속에 잠재하는 비현실 세계에 있어서의, 얼마간 비교적(秘敎的)인 허무주의가 스라브의 특성)으로 보기때문 이다.

추상주의의 창시자인 칸딘스키와 쿠프카는 스라브족이다. 추상화를 프랑스말로 는 (비구상화)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당장 그것이라고 알 수 있는, 눈에 익은 자연의 사물의 모습이 전혀 보이지않는 회화]를 대응개념으로 파악한 명칭이다. 구상적인게 아닌 비구상은 따라서 추상적이라는거며, 이러한 경향은 북방 특히 스라브의 특성이라 는 지적이다.

[회화에 있어서의 추상화는 인종적으로 보아서 결코 프랑스적인게 아니 며, 또 사실 그렇지 않다. 현실주의자이고 온건하며 객관적이고 고전적이며 전통적이 고 논리적인, 이를테면 데카르트적인 프랑스인기질은 추상화와 사용되지 않는 것을 갖 는다. 추상예술은 스라브적관념이며, 절대의 신비화 관념적영원성 허무가 불러이르키 는 현휘를 지향한다)(M. 지우르 "근대회화")는게 라틴의 시각이다.

기실 추상표현의 대가들은 대부분 북방(스라브 또는 게르만을 가리킨다)의 출신이라는걸 우리도 알고있 다. 20세기초로부터 세계미술의 주류를 형성해온 추상 표현은 남방적인 고전주의와 감각적섬세 그리고 지적위상(知的位相)의 대극에서 폭발적으로 전개된 원초적인 지향 이라고 하겠다.

그것은 조형적이면서도 정신적인 경향을 띠우며 비극적인 고뇌로 넘처 흐르는 실존주의적인 네오.로멘티시즘으로 보려는게 일반화된 관찰이다.

이러한 추세 는 게르만의 (표현주의)(이 명칭은 라틴의 전통미학이 경멸과 비하의 뜻으로 사용하는 데서 연유된 호칭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와 연계되는 스라브적인 영흔의 절규로 받 아드려지고 있으며, 인간의 의식속에 잠재하는 낭만적 요인의 직제적인 폭발로 보려는 입장이다.

주지하는데로, 이천년의 서양미술은 지중해연안의 문화권이 주도했으며 이러한 미술 사적인과가 일반화된 퉁념으로 되있었다. 상대적으로 북방적요인으로서의 미술형식은 미지의 대상이었다.

이러한 북방이 오랜 침묵을 허물고 타오르게 되었을때, 전기한 통 념자들은 당혹하게 되었으며 본능적예술형식 또는 자아적고뇌(自我的苦惱)를 요체로 하는 추상.표현은 급진적이고 야만적인 미술로 비치게 된다. 20세기초두의 현상이며, 러시아·아방가르드는 비록 단명했지만, 이것의 주도역활을 담당한다.

이로부터 파리를 중심으로 하는 예술평가의 정보적 구심력은 와해되며 다원적병발로서의 현상이 오늘 을 주도하게 된다. 이상과 같은 관점으로는 스타브의 예술잠재는 그들의 영토만큼 측 정불능의 광대무비한 인식대상으로 빛일수도 있다. 본논이 추적하려는건, 이러한 땅을 미술사적으로 어떻게 측정하고 기술(記述)로서의 지적도를 구성하는가에 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보기로 한다.

1962년 11월 (모스코미술 30년전)이 마네즈(manege)미술관에서 개최된다. 회화와 조각등 약이천점이 전시된 전시장에 별도로 3개의 별실이 꾸며지고 여기에 앞에서 말 한 (베류틴)과 제자들의 작품 75점이 전시된다(도판참조). 여기에 후르시초브가 당간 부와 문화관계각료를 거느리고 나타나며 이른바 (당나귀꼬리논쟁)이 점화되게 된다.

후르시초브가 (베류틴)일파를 향해 일갈한 내용을 참고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이것들은 도대체 무엇이오? 우리들 원로는 당신들을 이해할 수 없다는 거요. 당신 들때문에 재정을 낭비했다는걸 알게 되었소. 당신들은 정상인이요, 아니면 성도착환자 들이요? 한마디로 잘라 말하겠소.

우리는 당신네들 미술을 위해 땡전한푼(Kopek) 쓰 고싶지 않다는거요. 거두절미하고, 해외로 가고싶은 당신네들의 명단을 당장 주시오. 언필칭 (자유세계)라는 곳에 가는 여권을 내일 주겠소. 당신네들이 떠날 수 있게말이 오. 당신네들의 앞날은 빵점이요.

여기 걸려있는건 반소비에트이며 젖먹이 배냇짓에 불과하오. 예술은 개인의 기품을 높이고 그로 하여금 바른 행위를 각성시키는데 있는 것이오. 그런데 여기 있는건 무어라는거오? 누가 칠한거요? 그와 말하고 싶소. 무엇이 좋은 그림이고, 던러운 됫간같은 그림인지를‥‥‥?] 흥분한 후르시초브는 그의 결미 를 억양된 어조로 이렇게 마무리졌다. (우리는 당신네들한테 전쟁을 선포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