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공인) 예술가
「당나귀꼬리논쟁」에서 소개한 Ⅰ . 베류틴 같은 예술가를 통칭 「비공인」
(unofficial)예술가라고 말한다.
「비공인」 은 「공인」 이 아니라는 뜻이며, 「공인」
의 입장에선 배타적인 「도당(徒黨 = Cliquishness)」 으로 취급된다. 한편 「공인」
은 연방정부 또는 공화국의 「예술가동맹」 (Artists' Union)에 가입한 작가를 가리
키며, 「사회주의리얼리즘」 을 충실하게 이행하는게 의무이자 권리가 된다.
국가는 이
들에게 아트리쉐, 표현용구를 지급하며 발표의 기회와 공공프로젝트의 참가 그리고 때
로 급여를 지급하는 등의 제반 편리를 제공한다. 「공인」 은 이처럼 「예술가」 로서의
생존이 보장된다. 그러나 「비공인」 은 이러한 혜택이 없을 뿐더러 언더그라운드의 예
술가신세이다. 이러한 불행을 감수하면서도 오직 표현의 자유를 지킨다는 개별(個別)
의 긍지가 이들의 보람이며, 대부분 1910년대의 러시아 아방가드르의 후예임을 자처
하는 예술가들이다.
「비공인」 은 조직을 가질 수 없었으며 이른바 「한마리 늑대」 들로 비유된다.
이러한 「비공인」 은 1964년의 잠정적인 집계에 따르면, 모스코에 오백명 레닌그라드에
삼백명 그리고 키에브에 오십에서 백명정도가 있었다고 하며 소비에트전역에서 대략
천명이상이 은밀한 활동을 견지했던 것도 알려져 있다.
여기서 역설적인건 감시의 중
추기능이 집중되어있는 모스코와 레닌그라드에 오히려 더 많은 「비공인」들이 책동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것의 이유로서 이른바 「의식화」 (conscious)의 반대현상
을 든다. 지방작가들‥‥ 가령, 알마타, 예레반, 트비리시의 작가들은 「사회주의 리얼
리즘」 에서 소개했던, 스탈린초상의 어용작가 「게라시로브」 의 아카데미즘등을 열심
히 그리고 고지식하게 본떴다고 한다.
중앙당의 지부당은 도처에 있으며, 이곳의 벽면
을 장식하고 스탈린의 초상을 자신이 그렸다는 자부심이, 지방 작가들이 목표로 하는
가치관이었다고 한다. 또한 지방관리들의 가치관도 이 정도의 수준이어서.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비공인」의 미술운동을 검색하고 탄압하는게 「당」에 대한 충성과 공명
으로 여겼다고 한다.
이러한 1960년대의 정황을 Ⅰ. 에렌부르크는 「나는 알고 있었다. 젊은 소비에트예술
가들이 산업사회의 문화적결정요인(discovering America)에 대해 연구하고 있었다
는 것을‥‥ 그들은 마레비치, 타트린, 포포바. 로자노바등이 그들의 시대(時代)를 증
명했던 것처럼, 자신들으 시대를 증명하려 했으며 이미 증명하고 있었다」고.
에렌부르크(llya Ehrenburg 1891-1967)는 소비에트최고회의 대의원이며 레닌 문학상 국제
평화상을 수상한 러시아의 지성(知性)이다. 16세때 이미 혁명에 가담하여 투옥되며,
출옥한 후 파리로 망명하여 초기자본주의 난숙기의 세기말적인 증세를 체감적으로 경
험했던 스라브의 지성이다.
복합착종으로 얽히는 20세기초의 유럽문명의 현장에서,
여러 예술가들과 접촉하며 문명사적인 관점에서 사회개혁을 투시했던 시인이자 진보
적인 사상가이다. 미술에 관한 그의 일가견은 정평이 있으며, 소련방의 지성인 가운데
서 드물게 보는 서방통이기도 했다.
이러한 그의 눈에 1960년대초의 사회주의리얼리
즘의 앞날이 부정적인 빌미로 비쳤던 것이었다. 그는 당국에 대해 이렇게 불만을 표시
하기도 했다. (우리의 미술관은 혁명초기의 놀라운 미술작품들을 많이 소장하고 있다.
그런데도 이것을 일반에게 공개하지 않는다는건 유감스러운 일이다. 굳게 닫혀진 제도
적인 사슬을 우리는 풀수가 없다).
실제에 있어서 (사회주의리얼리즘)은 모스코나 레닌그라드같은 중심부에선 성공적이
지 못했던걸로 알려져있다. 「즈다노브시대」 의 어용비평가인 B. 니키포르브는 [지난
여러해동안 소비에트미술의 전개과정속에서도 여전히 반동미술(formalism=구체적으
로는 추상표현을 가리킨다)이 살아남아 있었다는건 놀라운 일이다. 현재도 이러한 갈
등은 지속되고 있다]고 개탄한바 있다.
이러한 「반동미술」 의 본체는 앞에서도 여러번 지적한데로 혁명초기에 이룩했던 「위대한 실험」 (great experiment)을 계승하려는 지속적이며 끈기있고 굽힐줄 모르는 「비공인」 들에 의해서 추진되었던 것이었다.
이들 주로 모스코와 레닌그라드외 지하에서 활동했던 작가들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30년대부터 레닌그라드공방전이 한창이던 40년대초에 세상을 떠난 P.필노노브(P. Filonov) , 58년에 사망한 R.팔크 ( R.Falk) , 혁명직후부터 초현실경향의 작가였던 A. 티스러 ( A.Tyshler) , 레닌그라드의 N. 알트만 (N.Altman) 그리고 유태민족의 전설을 샤갈풍으로 표현했던 A. 카프란(A.Kaplan)등이 그들이다.
젊은 미술학도들은 이들을 추종했으며, 정치적수단으로서의 사회주의리얼리즘의 진
부함을 일반대중에게 계몽하여 알리는한편, 관료주의적인 권위의식이야말로 스라브민족의 예술적고유성을 말살하는 장본인임을 천명하고 나서기 시작했다. 젊고 발랄한 인테리겐치아인 이들은 학생, 기술자, 과학자, 교육자, 법학자 그리고 새로히 대두되었던 테크노크라트로서의 엘리트들이었다.
이들 이른바 「신세대」( new Class)로 불리
우는 젊은 인테리겐티아집단은 「비공인」을 원조하는「붉은」 소부르조아이기도 했다.
예부트쉔코라는 시인은 「비공인」을 수집했으며, 후르시조브의 사위이자 「이스베치아」
의 편집장을 지낸 아드쥬베이는 「당나귀꼬리」당시 이십점의 추상화와 현대조각품을 수
집했다고 한다. 그리스출신의 대지주의 아들인 G.코스타키 (G.Costakis)는 대수집가
로서 혁명전으로부터 현재에 걸친 상당한 작품을 수집한걸로 알려져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