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즈다노브
이상의 기본안을 요약하면 다음의 추진경과가 상정되며,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창
출하는 조건으로 첫째 사회주의를 향한 노동자 농민계급의 운동의 존재, 다음으로 그
러한 운동에 의한 사회주의를 향한 노동자 농민계급의 운동의 존재, 다음으로 드러한
운동에 의한 사회주의를 향한 노동자 농민계급의 운동의 존재, 다음으로 그러한 운동
에 의한 사회주의적인 의식과 사상의 광범한 침수 그리고 이러한 의식과 운동을 본질
로하는 미술가의 확보등이 그것이다.
첫째로 과거의 리얼리즘인 추상적인 낙천주의 또
는 염세주의적인 요소의 극복,
둘째 종래의 리얼리즘이 유산계급의 기호에 종속되었던
것을 진보적인 계급적당파성으로 환원시킨다는 것,
세째로 과거의 리얼리즘가운데서
여러 장점을 섭취하여, 과거의 훌륭한 민족적전통과 현재의 민족개성을 적극적으로 살
려서 세계적인 것과 민족적인 것을 변증법적으로 종합하는 것,
그리고 끝으로 종래의
미술사는 각 장르별로 발전의 불균형 파행성이 있었는데, 사회주의사회에 있어서의 인
민적인 휴머니즘의 전면적발전에 따라 새로운 대중적인 쟝르를 구현할 것등이 비교대
상이 되었다.
이러한 방법론에 따라 제작된 사회주의리얼리즘은 소비에트인민의 밝고 아름다운 생
활상, 레닌 그리고 스탈린등의 예술적초상, 소비에트의 혁명가, 전사, 사상가, 사회주
의노동의 영웅등의 초상화 그리고 혁명을 전후한 역사적정황 또는 대조국전쟁(이차대
전)에 있어서의 빛나는 영웅적공적을 찬양고무하는 대규모의 테마미술를 들 수 있으
며, 인민적인 유토피아관을 상징하는 풍경화, 정물화등도 있다. 한편 대중적인 미술형
식으로서 포스터, 삽화 그리고 인쇄화등의 쟝르도 개발된다.
한편 이러한 「사회주의리얼리즘」이 소비에트사회에서 전성기를 맞이하는건 이차전후
인 1946년부터 스탈린이 사망하는 53년까지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이것을 강력하게
추진한 장본인은 1934년 고리키와 더불어 이 문화정책을 천명했던 「A·즈다노브」(A.
Zhdanov) 이다. 공산당 중앙위원회 서기이며 선전상 (propaganda Administration)
을 겸한 그는 예술전반에 걸친 독재자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전기한 46∼53년사이의
소비에트예술사를 「즈다노브시대」 또는 「즈다노비즘」이라고 부른다는건데, 서방세계
의 관점에선 이 시기를 예술불모의 시대로 보고있는게 흥미롭다.
어떻든 정력적이고 과감한 즈다노브의 권력은 소비에트만이 아니라 위성제국의 문화
정책에까지 막중한 영향력을 미쳤으며, 평양의 김일성대학에서도 그의 이데오로기의
개념을 모형으로해서 예술교육을 실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상의 「사회주의리얼리즘」 의 대표작가로는 스탈린초상으로 당의 신임이 두터웠
던 「게라시모브」 (A. Gerasimov)를 위시해서 「보드킹」 (K. Petrov-Vodkin),
「데이네카」 (A. Deimeka), 「카즈만」 (K.Katzman), 「카사드킨」(N.
kasatkin), 「마류틴」 (S. Malyutin), 「에파노브」 (V. Efanov), 「소코로프·스
카리아」 (R. Sokolof-Skalya), 「기타이카」 (K. Kitaika), 「세로브」(V.
Serov)등을 들수 있으며, 조각가로서는 「마니젤」 , 「부제지치」 , 「톰스키」 ,「아
즈굴」 , 「메르구로브」 , 「고넹코브」등을 들 수 있느네 대부분이 기념비적이고 거대
주의의 입상 또는 군상조각들이다. 한편 이러한 「사회주의리얼리즘」 이 서방세계의
관중들에게 공식적으로 선보이게 되는건 1937년 파리의 「세계박람회 40주년」기념
행사때이다.
에펠탐을 마주보는 샤이요궁전의 양날개의 좌우에서 나치독일과 소비에트는 센느강
을 따라 거대한 전시관을 경쟁적으로 건립한바 있었다. 전시후 철거되는 건물인데도
두 전체주의국가는 막중한 예산으로 국위를 과시하는 전시관을 건릴했던거며, 소비에
트관은 「무히너」 (V. Muhina)의 남녀한쌍으로 상징된 거대한 「코르호즈」 조각을
건물위에 세웠으며 「사회주의리얼리즘」 을 과시한바 있다(도판참조).
소비에트의 상
징인 낫을 든 여성농민과 망치를 든 남성노동자로 구성된 이 거대한 조각상은 서방세
계의 심미안을 당흑하게 만들었다는게 후일담이다.
그리고 전시실에 진열된 혁명기록화와 산업전사들의 작업광경은 모사한 거대회화를 보면서, 한결같이 나폴레옹시절의
지나간 기록화의 씁씁했던 기억을 되새겼다는게 전시평이었다. 그리고 이년후 나치독
일은 폴랜드를 기습침공하며, 소비에트는 그의 사회주의리얼리즘과 더불어 닫혀진 공
간 저넘어로 망각하게 된다.
◀ 게라시모부, "스탈린과 보로쉬로브" 1938
(보르쉬로브는 실제에 있어서 스탈린보다 키가 훨씬 컸다.)

◀ 브로드스커, "레닌", 1930
◀ 1937년 파리박람회의 소비관. 조각은 <무히너>가 제작했다.

◀ 콜소브, "스탈린과 고르키", 1947, 캔버스에 유채, 55*66cm

◀ 소로브요브, "사회주의로 전진하자" 1963, 21/2*45cm

◀ 디네카 "페트로그라드의 방위" 1928 캔버스에 유채 83/4" * 139 1/2"
◀◀ 무어 "자원하겠는가!" 1920
◀ 사포쓰니코브, "도시에 식량을" 19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