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소비에트)미술의 변천

유준상(전 학예연구실장)


I)서론 Ⅱ)혁면전의 러시아미술 Ⅲ)러시아 · 아방가르드 Ⅳ)사회주의 리얼리즘 V) (페레스트로이카)이후 Vl)결론

[소비에트]

소비에트라는 러시아말은 평의회(評議會)를 뜻하며, 혁명과정에서 노동자는 천명을 단위로 병사는 일개중대를 단위로 한명의 대표를 선출하여 조직된게 (소비에트)이다.

이러한 구조적위계가 피라밋의 비례로 위계화되었던게 (최고소비에트)의 구조적특징 이었으며, 이러한 대표제도를 레닌은 (직접적인 민주주의)라고 불렀다. 관례적인 의회 민주주의보다 민중적이고 민주적인 국가체제가 정비되는 것으로 믿었기 때문이다.

이 러한 조직을 나중에 농민이 가세한 소비에트로 발전되며, 입법, 사법, 행정을 통일시 킨 혁명독제체제의 실현을 보게 된다. (푸로레타리아드의 독제체제)라는게 이것이다.

이러한 조직구조의 잠재력은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USSR)으로 발전되지만 그 실체는 126의 인종(人種)과 120의 언어(言語) 그리고 15개공화국과 20개의 자치 공화국 그리고 다시 8개의 자치주와 10개의 자치지방으로 분화된다.

이러한 체제의 구성인구는 대략 3억으로 집계된 바 있었다. 따라서 (소비에트)는 땅의 이름온 아니며 (체제)의 이름이다. 그러니까 126의 인종이 살고 있는 땅이 있는데 그것을 하나의 이 름으로 부르는게 소비에트이다.

이것이 소비에트이며, (노동자 농민 인테리겐차 그리 고 이나라의 모든 민족과 민족체(民族體)의 근로자의 의지와 이익을 표현하는 사회주 의적인 전인민국가(全人民國家))(구소련헌법 제1조)를 뜻한다.

[사회적발전 및 문화] (제3장)의 19조에선 [노동자 농민 인테리의 동맹 그리고 사회의 사회적동질성의 강 화, 즉 계급적차이, 도시와 농촌, 지능적근로와 육체적근로사이의 본질적차이의 불식, 소련방의 모든 민족 및 민족체의 전면적 발전을 촉구한다)로 되어있다.

한편 [문화수 준의 향상)(제27조)에선 (국가는 소비에트인민의 도덕적, 미학적인 도야를 위한 그리 고 문화수준의 향상을 위한 정신재(精神財)의 보호 및 증대 그리고 광범한 이용에 대 해서 배려한다)는거며 [소련방에 있어서는 직업적인 창작의 자유가 보장된다.

이 자유 는 과학연구와 발명활동 그리고 합리화활동의 광범한 전개 그리고 문학 및 예술의 발 전에 의해서 보장된다. 국

가는 이를 위한 필요한 물질적조건을 마련하고 지방단체와 창작동맹에 지원하며, 발명과 합리화제안의 국민경제와 기타 생활영역에의 정착을 조 직한다)로 뒤어있다.

이상을 요약하면 (공산주의건설의 목적)을 위한 (사회적동질성)으로서의 창작자의 (창작의 자유)를 위해 (국가가 지원한다)로 압축된다고 하겠다. 이것이 헌법에 규정된 법규로서의 문화정책이지만, 우리들의 관심을 끄는건 (사회적동질성)이라는 개념속에 (문화적동질성)의 내포가 어느만큼 잠재하는가의 문제라고 하겠다.

헌법은 어느 국가 민족에 있어서도 가장 이상적인 기본법의 조항으로 구성되는데 상례이다. 문제는 이러 한 이상과 실제사이의 마잘의 변수에 있다고 하겠다. 특히 소비에트처럼 복합착종으로 얽힌 국가체제에 있어서는 결코 쉬운 문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서 필자의 경험담을 퍼력해보도록 한다. (소비에트)가 해체되기전인 89년 9월 소련방의 하나인 구르지아공화국의 트비리시에서 국제미술평론가정기모임이 있었고 필자는 이곳에 일주일간 머문적이 있었다. 구르지아는 터키와 인접한 자연조건의 헤택 을 입은 관광지이고 스탈린의 모국이기도 했다.

그런데 공화국당국은 방문객들에게 (카카바체)p. kakabadze 1889-1952)라는 처음 듣는 이름의 한 미술가에 관한 흥 보로 열을 올리는 것이었다. 그의 기념관, 작품, 저술 그리고 강연을 통해서 구루지아 가 배출한 근대의 대가라는 것이었다. 어느 나라나 민족적영웅이 있는법이고 그들이 존경하는 예술가라는게 있다.

다만 그러한 영웅과 예술가가 약소국가에서 태어났다는 인과때문에 알아도 좋고 몰라도 무방한게 이러한 유형의 이름들이기도 하다. [카카바 체]는 일차대전후의 파리로 진출 약 십년가량 파리화단에서 활약했다는거며, 피카소, 듀피, 드랭, 시냑, 코르비지에(쟝느레), 칸딘스키, 필노노프등과 같은 선상에서 작업 했기 때문에 이들과 동격이라는게 홍보의 골자였다.

기념관의 작품온 과연 이러한 경 과를 보여주는 것이었고 20세기초반의 근대적감성을 그의 작품들은 충실하게 답습하 고 있었다. 이러한 그는 1927년 구르지아로 금의환향하며 창작, 연극, 시네미등인 구 르지아예술의 전반분야에서 성공적인 활동을 전개한다.

그런데 이러한 (카카바체)가 1930년대로 들어오면서 (구르지아미술가동맹) (Artist's Union)에 의해 축출되고 매도당한다. 그의 작품, 특히 파리시절의 작품 은, (반동적)(Formalistic)이라고 (동맹)이 판결했기 때문이며 따라서 [소비에트미 술]로서는 부적합하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그는 초지를 굽히지 않았으나 1948년 [트 비리시예술원)을 강제로 추방당하게 된다.

이러한 (카카바체)의 명예를 회복해야 한다 는게 구르지아당국이 목적으로 하는 홍보였다. 보다 직설적인 표현으로는 이런 것도 있었다. 구루지아는 독자적인 문화표지를 가지고 있는 문화권이며 추상적관념으로 일 반화된 이데올로기의 미술형식인 소비에트미술하고는 무관하다는 것이였다. 종교, 언 어, 인종, 역사가 다른 구르지아의 미술이 어째서 (소비에트미술)(사회주의 리얼리즘 을 여기서는 뜻했다)의 통제를 받아야만 하는가의 거부표시인 것이었다.

펼자가 경험한 또다른 것으로는 구르지아의 현역작가인 R.토르디아(R. Tordia)의 아트리에를 겸한 아파트에서 있었다. 날개달린 백의의 천사들이 머리 언저리에 후광을 빛내면서 하늘로 숭천하는 형상들로 화면전체가 구성되어 있는 작품앞에서, 그는 이렇 게 말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종교화는 아니라는 것.

금년 5월에 있었던 구르지아의 자 주독립 소요당시 소련방군에 의해서 사살된 59명의 희생자를 추모하는 기록화라는 것. 그리고 구르지아는 곧 독립할 것이며 유구하고 고유한 문화전숭을 되살려 민족형 식으로서의 독자적인 표현양식을 개발하는게 자신의 예술작업이라고 했다.

(카카바체)나 (토르디아)의 미술은 우리가 모르는 것이지만 지난날의 소비에트미술 을 구성했던 구성단위였던건 어떻든 사실이라고 하겠따. 이러한 문화현상은 구르지아 만이 아니라, 위에서 예시한 130의 인종과 120의 언어권으로 분화할때 우리들이 단순 하게 말하는 (소비에트미술)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더욱 더 모르게 만드는 것이었다. 바꿔 말해서 (소비에트미술)을 말한다는건 아무것도 모르면서 무엇을 말하는 자가당착 이 귀결점이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소비에트는 지난 70년간 어떻게 하나의 강력한 집약체제로서의 전체주의 를 유지할 수 있었다는건가. 그것은 이데올로기였다. 이 높온 단계의 추상적 언어문맥 (言語文脚)은, L.스트라우스의 지적처럼 [코뮤니케이션의 수단으로서의 쓰고 읽는 행 위의 일차적기능은, 다른 인간을 예속시키기 쉽도록 하는데 있다)의 적절한 활용이었 기 때문이다.

(레닌을 두목으로 하는 우리 공산당의 지도밑에 러시아의 노동자와 농민 에 의해서 수챌된 십월사회주의대혁명은, 자본가와 지주의 권력을 타도하고, 억압의 사슬을 깨부수고, 푸로레타리아·딕타투라를 수립하여, 소비에르국가-새로운 타입의 국 가이며 혁명의 획득물을 방어하고 사회주의 및 공산주의를 건설하기 위한 기본적용구 (基本的用具)로서의 국가를 창조했다.

자본주의로부터 사회주의로의 인류의 전세계사 적 전환이 시작되었다)(구소련헌법 서장) 세상의 무산자계급들에게 있어서 이러한 이데을로기는 바로 신화(神話)였던것이며 이러한 이데을로기를 교시(敎示)하는 입장에선, 노동자 농민은 수동적이고 종족적인 다수(多數)인데 불과했다.

이데올로기는 언어로서 전달되며 문맹(文盲)에겐 신화의 역 할로서의 (기본적용구)이기도 했기때문이다. 그러나 신화와 전설의 가락에 넋을 잃고 도취했던 마을사람들이, 새벽닭이 울자 이야기의 마당을 벗어나 각기의 집으로 뿔뿔이 흩어져 실생활로 돌아가는 현상처럼, 80년대의 노동자 농민은 10년대의 노동자 농민 은 아니었다. 이데을로기는 실체(資體)가 아니라는 것을 깨다를만큼 그들은 성숙했기 때문이다.

앞서 구르지아의 예시처럼 소비에트는 와해되기 시작하며 이것의 과도기현상으 로서의 국가체제가 1991년말 (알마타선언)으로 채택된다. (독립국가연합) (Commonwealth of Independent States)이 그것이다. 12개국으로 구성되는 CIS는 첫째 국가의 독립과 국가간의 평등, 둘째 민족자결과 불간섭, 세계 국제법 의 준수등이 상호협약의 내용이었다.

그렇다면 진즉 우리들이 관심으로 하는 대상은 어떻게 되는가? 소비에트가 와해된 현재 소비에트미술이란 있을 수 없는게 아닌가. 그런 것은 처음부터 없었다. 그것이 있는 것처럼 생각한건 언어의 함정때문이었다.

M.샤피로가 말한대로 (예술의 사회적 인 성격은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 그 자체에서도 알 수 있다)는게 여기서의 함정이다. 우리들이 사용하는 언어는 (한글)이다. 이것을 남에선 (한국어)라고 하고, 북에선 [조 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어] 또는 좀혀서 [조선어]라고 호칭한다고해서 [한글)]그자체가 살아나고 죽어없어지는게 아닌거와 같다.

문제는 문화현상을 정치적으로 분류하려는 데 있다고 하겠다. 이러한 초국가주의심리야말로 예술의 자연스러운 성장을 저해했던 방해요인이었음을 차제에 명심할 필요가 있다. 앞에서 인용한 (지도는 땅이 아니다)처 럼 (소비에트)라는 명칭과 지도를 모두 없앤다고해서 땅 그것이 지구상에서 소멸되는 건 아니다.

땅은 영원하며 거기서 삶을 영위하는 인간생명 또한 불멸하다. 이러한 땅 과 사람들의 미술이야말로 처음부터 우리들의 관심사였던 것이었다. 그것은 스라브민 족을 주축으로하는 북방미술에 관한 우리의 잠재된 호기심의 유발로서 비롯된 것이기 도 했다.